2015년 설립된 한국다양성연구소는 한국 사회에 유일한 다양성교육 전문기관으로, 한국 사회의 다양성교육은 10년 전 시작됐다. ‘다른 사람들, 다른 기관에서도 다양성교육을 하는 곳이 있는데 왜 한국다양성연구소가 유일하다고 주장하느냐’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아래와 같은 정의에 부합하는 다양성교육을 하는 곳은 여전히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첫째, 다양성은 “권력의 격차”와 권력의 격차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회적 특권과 억압(social privilege and oppression)”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다양성이라는 용어가 쓰이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다양성(diversity)을 여러 가지(variety)와 같은 의미로 설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양성을 그저 ‘여러 가지’로 설명하면, ‘세상엔 다양한 사람, 다양한 생각이 있다’, ‘모든 사람은 아름답다’와 같은 듣기 좋은 표현들이 나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종종 ‘너도 맞고 나도 맞고 모두가 맞다’와 같은 차원에서 그저 ‘서로 존중하라’는 식의 권력과 억압에 대한 이해와 기준이 없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둘째, 다양성은 단순히 다루는 정체성의 수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상호교차성(상호성과 교차성) 관점과 실천이다. 그렇기에 한국다양성연구소의 다양성훈련에서는 14가지 이상의 사회적 정체성(인종, 민족(이주, 출신 국가, 언어), 종교, 지역, 성별(지정 성별, 법적 성별), 성별 정체성, 성적지향, 가족의 형태, 장애, 질병, 나이, 외모/사이즈, 학력/학벌, 고용의 형태, 소득/경제력)을 다루며 각 정체성 내에서 권력의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특권과 억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를 통해 각 사회적 정체성마다 특권그룹, 억압그룹 그리고 경계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다.
서로의 존재와 생각을 인정하는, 혐오와 차별이 없는 대화가 필요하다. ⓒpixabay
다양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반드시 다뤄져야 하는 ‘상호성’이란 그 어떤 사람도 모든 사회적 정체성에서 특권그룹에만 속하는 사람도 없고 모든 사회적 정체성에서 억압그룹에만 속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특권그룹에 속하는 정체성도 가지고 있고 억압그룹에 속하는 정체성도 가지고 있다. ‘교차성’은 한 사람이 두 가지 이상의 억압그룹에 속하게 되며 경험하게 되는 복합적인 차별과 억압에 대해 다룬다. 한국다양성연구소의 다양성훈련은 ‘상호교차성’을 중심으로 사회구조에 대한 이해와 사회구조 속의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고,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다양성은 권력의 격차와 이와 연결된 착취의 구조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쟁과 폭력, 기후(기후변화, 기후위기, 기후적응), 종차별(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 그리고 섭식(비건 및 다양한 채식 실천, 알러지, 종교, 체질 등) 등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이야기도 더 다룰 방안을 계속 고민한다.
셋째, 활동(사회의 단면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직면활동)과 대화로 구성되는 참여형(체험형) 교육을 진행한다. 한국다양성연구소는 교육이라는 용어보다 훈련(training, 트레이닝)을 선호한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연습을 통해 성장해 나아가는 과정에 대한 강조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서로 배움의 시간이라는 것에 대한 강조이다. 활동과 대화를 진행하는 사람도 교육자(혹은 강사)가 아닌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활동과 대화를 진행하는 진행자(촉진자))라고 부른다. 한국다양성연구소의 다양성교육은 주로 다양성훈련 워크숍(diversity training workshop)이라고 불린다.
넷째, 늘 다양성(diversity)과 함께 붙어 다니는 용어인 포함(inclusion)을 정확히 “포함”으로 표현한다. 한국 사회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용어는 “포용”이다. 포용은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임’이라는 뜻으로 inclusion에 대한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포용은 관용(tolerance 혹은 embrace)에 가까운 뜻이다. 사회에서 여러 이유(고정관념, 편견, 낙인, 차별, 착취, 억압, 폭력 등)로 배제(exclusion)를 경험하는 사람이 없게 하자는 것이 포함이다.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제도와 문화)로 접근해야 한다. 포용이 포함보다 따뜻한 말로 들릴 수는 있으나 포용으로는 사회구조의 문제인 차별, 억압, 폭력을 사라지게 할 수 없다. 포용은 권력의 격차가 느껴지는 용어이기도 하다. 누가 누구를 포용할 수 있는가? 포용은 흔히 사회에서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비정상”으로 규정되는 사람을 너그럽게 받아주자는, 권력관계가 전제된 의미로 사용된다. ‘비성소수자가 성소수자를 포용하자’,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포용하자’, ‘남성이 여성을 포용하자’는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는 포함(inclusion)이 아닌 관용(tolerance)에 가깝다. 다양성교육은 권력관계가 전제된 특권그룹의 관용의 자세가 아닌, 권력관계를 인지하고 성찰하며 해체하는 주체로서 모두가 포함되는 세상을 만드는 사람으로 초대하는 장이어야 한다.
2. 한국다양성연구소와 한국 사회의 지난 10년
이와 같은 다양성교육을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도입하고자 한국다양성연구소를 설립하고 활동을 시작한 해였던 2015년만 하더라도 한국사회에서 지금처럼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페미니즘이나 퀴어라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한국사회는 조금이나마 변화했고 한국다양성연구소도 그 가운데서 역할을 하고자 했다. 오늘날 다양성은 거의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는 말이 됐다. 물론 이 단어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 의미를 잘 알고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한 오해를 가지고 있거나 왜곡된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항도 심해졌다. 그러나 다양성, 페미니즘, 퀴어 운동에 대한 저항을 부정적으로만 여길 필요는 없다. 존재감이 없었을 때는 저항감도 없었지만, 이젠 기존의 사회(누군가에게는 “질서”라고 여겨지는 억압의 체제들)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저항이 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다양성연구소는 지난 10년 간 다양성훈련을 실시해 오면서한국사회에서 진행되는 인권교육, 시민교육, 노동교육, 성교육, 성평등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영향을 미쳐왔다. 하나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함께 다루며 사회구조 속에 일어나는 억압을 종합적이고 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알렸다. 또한 강연 중심의 교육 현장에 참여형/체험형/대화형 교육의 효과성을 알렸다. 한국다양성연구소는 이제 다양성훈련 퍼실리테이터 양성과정을 진행하며 연구소의 다양성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익히고 함께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할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다양성훈련이 진행될 날을 희망하고 있다.
한국다양성연구소가 다양성 캠페인으로 진행하고 있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 운동 역시 10년 전에는 사회적으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심지어 시민사회운동계에서 조차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시급하지 않은 사안’으로 여겨졌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다양성연구소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화장실의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 이를 요구하는 수많은 앨라이들과 단체들의 활동에 의해 ‘모두를 위한 화장실’의 필요성이 점점 더 알려졌다. 아직도 부정확한 정보를 갖고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그동안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두 명의 대통령 후보(심상정 후보, 권영국 후보)의 공약으로 등장할 정도로 이슈화되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3.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어려움과 도전
점점 더 심한 각자도생 경쟁사회로 치닫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다양성 존중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억압(anti-oppression) 다양성운동이 말하는 ‘모두가 억압에서 해방된 사회’를 누군가는 ‘가정과 국가가 무너진 무질서한 사회’로 여긴다. 또한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향상을 위한 정책’을 누군가는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조치’처럼 생각한다. 정확한 정보보다는, 왜곡/과장/가짜뉴스에 의한 확증편향을 부추기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두려움들은 누군가의 권력 유지를 위한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손쉬운 혐오의 확산에 맞서 사회의 퇴보를 저지하고 모두가 포함되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어려움의 배경을 명확히 살펴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점검해야만 한다.
전쟁 그리고 전쟁 직후 독재를 경험한 한국 사회는 반공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국가가 빈곤을 없애고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힘써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자본주의, 더 나아가서는 공산주의라고 낙인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으로부터 큰 원조와 강한 지지를 받은 독재 정권들은 대기업 중심, 수출 중심의 경제체제를 만들었고 이는 마치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동의어이고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빨갱이”라며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북한을 옹호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인식을 만들었다. 정치 기득권자들은 지역감정과 양당제를 이용하여 영원히 권력을 이어가려고 한다.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은 지구가 보내는 위험신호와 과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경제 발전이라는 것이 영원히 가능한 것처럼 말하고 여전히 낙수효과라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인 양 시민들을 속이려 한다.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자본가의 입장에서 생각하도록 길들여진다. 4세 고시라는 것이 생길 정도로 영유아 때부터 경쟁을 시작해 평생 경쟁하며 사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 성과를 내는 것이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일로 믿고 살아가는 사회가 됐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을 매일 같이 외우며 지냈다는 시대는 끝났지만, 그 문화적 압박은 아직 유효하다. ‘돈이 최고’라는 생각이나 ‘획일적인 미적 기준’과 같은 것들은 전 세계적이긴 하지만 한국에선 유독 더 강력하다.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살고 같은 것을 위해 살아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강하다. 유행을 따라야 하는 문화가 심하다. 외모(얼굴 생김새, 피부, 사이즈, 옷차림)에 대한 강박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인은 반만년 넘게 “단일민족”이었다는 신화는 인종/민족적인 우월감을 가지게 한다. 왜곡된 유교 문화와 개신교적 신념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타종교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하며 ‘다양성 존중은 가정, 학교, 군대, 국가를 파괴한다’는 식의 사고로 낙인과 폭력의 사회를 유지하며 다양성 존중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큰 장애물로 작동하고 있다. 저성장/마이너스성장 시대에 ‘나도 살기 힘든데, 왜 사회적 소수자를 걱정해야 하냐’, ‘왜 내 세금으로 저들을 도와야 하냐’라는 생각이 크게 공명하며, 실리적으로 생각해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제가 유지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으로 인식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생각이 차별적인 생각이 아니라 공정을 위한 정당한 주장으로 포장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개선하고자 하는 정책이 모두가 같은 규칙으로 경쟁해야 하는 공정한 경쟁을 막는 불공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얽혀 있으며 정계, 재계, 학계, 언론 그리고 온라인커뮤니티와 유튜브 등 미디어에서 자신의 이익(표, 돈)을 위해 서로를 인용해 가며 차별과 혐오가 점철된 사회 구조를 유지, 강화시키고 있다.
다양성훈련에서 무빙 닷츠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필자 제공
4. 다양성교육의 역할과 방향
인간은 자신의 문제(고통)이 아닌 것에 대체로 공감하고 반응하지 않는다. 현대사회처럼 모두가 다 바빠 여유가 없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양성훈련은 다양성 문제(권력에 격차에 의해 발생하는 사회적 특권과 억압)를 자신의 문제로 느낄 수 있게 한다.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시간이다. 모든 존재는 실제로 연결돼 있다. 사회가 각자도생의 사회가 될수록 우리는 연대하지 못하고, 그렇게 돼야 기득권자들의 권력이 공고히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서로를 느낄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뿐이다. 다양성교육은 지식 전달이 아닌, 서로의 삶과 경험을 알고 느끼게 하는 시간이 될 때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 된다.
사회가 점점 더 보수화, 극우화 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는 소속감이 필요한데,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극우의 사상에 빠지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도 환대받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해서 극우단체에 합류한다고 한다. 다양성교육은 서로를 갈라놓고 서로를 적대하게 하는 사회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있는 모습 그대로 환대, 환영받고 소속감을 느끼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는 공동체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우리는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좋은 사회가 아닌 모두에게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공교육을 포함해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룹 내에서 다양성의 가치가 확산될 수 있을 때 사회전반의 문화가 변화할 수 있다. 이때문에 교육대학 및 사범대학에서 예비교사를 대상으로 다양성교육이 필수과목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사 연수로도 제공하고 교감, 교장 진급시에도 이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국정운영의 가치에 다양성이 반드시 포함되어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 군인, 경찰, 의사 등에게 다양성교육이 실행될 수 있어야겠다.
개인의 변화부터 시작해 사회구조적 변화를 만들고, 사회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한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에 완성도 높은 다양성훈련을 실행할 수 있는 퍼실리테이터가 더 많아져야 한다. 조금이라도 다양성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다양성연구소의 다양성훈련을 경험하며 서로의 운동을 확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경험의 연결과 확장을 통해 모든 사람을 다양성, 인권, 평화, 평등의 세상으로 초대하자. 이 사회를,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자.
필자주 -9월 6일(토요일) 12시부터 17시까지 인권재단사람에서 한국다양성연구소의 10주년 기념 행사(다양성 국제포럼 및 생일파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