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대성공? 전문가·시민사회 “21세기에 공납제 부활” 쓴소리

“균형과 자존을 어떻게 지킬지 근본적 고민 필요”

2일 자주통일평화연대에서 주최한 ‘한미정상회담 분석과 과제 모색’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자주통일평화연대 제공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관세 압박과 더불어, 회담 직전 “숙청, 혁명” 발언이 터지면서 긴장 속에 개최된 회담은 스펙터클한 상황 전개와 적지 않은 후일담을 남겼다. 트럼프 스타일의 정상회담으로 인해 사실상 기자회견 수준의 생중계가 이뤄졌고, 비공개 회담 부분도 우리 대통령실 참모들이 여러 통로로 내용을 전했다. 대통령실과 외교당국은 한결같이 ‘역대급 성공’ ‘일촉즉발 위기의 극복’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첫 한미정상회담인데다 트럼프발 외교갈등이 전세계를 휩쓰는 상황이라 자연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회담 뒤 전문가나 시민사회의 분석과 평가는 이례적으로 적다. 아무런 공식문서가 발표되지 않았다는 점이 분석과 평가의 가장 큰 난점이 됐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이 평가토론을 열었으나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그래서 2일 자주통일평화연대(이전 6.15남측위)에서 주최한 ‘한미정상회담 분석과 과제 모색’ 토론회는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비판적 전문가들과 시민사회의 반응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이날 안보 분야를 발제한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형식적으로 성공했지만 내용적으로 종속적 구조가 심화됐다”고 우려하며, 가을에 열릴 예정인 연례 한미안보협의회(SCM, 국방장관 협의체), 한미군사위원회(MCM, 합참의장 협의체)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합의문이나 공동발표문 등 일체의 문서가 발표되지 않았다. 따라서 양국 정상이 공개 및 비공개 회담에서 한 발언,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이 회담 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한 연설을 기초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나쁜 합의문보다는 없는 합의문이 낫다”(조현 외교부 장관)는 입장이다. 동맹현대화 등의 개념을 두고도 그 구체적 의미를 두고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말의 해석권은 강자가 갖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본격적인 ‘안보 청구서’가 SCM, MCM에서 날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침 이날 정부는 국방비를 8.2% 인상하는 내년 예산안을 공개했다. 한미 정상은 한국의 국방비 대폭 증액에 의견을 모았고, 내년부터 곧바로 반영하게 된 셈이다. 김 교수는 “국방비 증액이 우리의 독자적 역량 강화가 아니라 미국산 무기에 대한 의존을 더 심화할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상대적으로 복지, 교육, 기후 등 비전통적인 ‘인간 안보’ 예산을 잠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동맹현대화’에서 방산 분야가 중요한데 미국에 더 의존적인 하청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미 2030년까지 결정된 방위비분담금(SMA) 합의도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시민사회에 국방비 및 SMA 감시네트워크, 전작권 환수 로드맵 재정립 촉구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2일 자주통일평화연대에서 주최한 ‘한미정상회담 분석과 과제 모색’ 토론회에서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자주통일평화연대

경제 분야를 발제한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한미정상회담과 이에 앞선 관세협상 결과를 “제국주의적 수탈”이라고 규정했다.

나 교수는 한국은행의 관세협상 영향 전망을 인용하며 “미국 현지 생산의 확대가 국내 산업의 공동화를 야기할 수 있고, 향후 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에 투자되면 협력사와 노동자들에게 긍정적 효과가 있을 대규모 투자가 미국으로 가면서 대기업이나 주주는 좋을 수 있어도 나머지 경제주체들에게는 악영향을 끼치게 됐다는 지적이다.

마스가(MASGA)라 불리는 미 조선업 부활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우려가 쏟아졌다. 나 교수는 “미국에서 배를 만들면 세계에서 제일 비싼 배가 된다”며 생산은 물론 판매와 이후 수주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점을 짚었다. 또한 틱톡의 예를 들며, 한국이 진출한 조선소에 대해 미국이 소유 또는 통제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군함 유지보수(MRO) 사업 역시 부산 한진중공업과 진해 STX가 유력한데, ‘제2의 사드’라는 안보적 우려와 함께 방위산업특구 지정으로 인한 기본권 제약과 시설 무상공유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나 교수는 “이전에는 제국주의가 자본을 수출한다고 배웠는데, 지금 제국주의는 자본을 수입한다”면서 “그러나 주변부 국가의 자본 수출은 중심부 국가의 자본 수출과 달리 종속을 심화시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자라는 이름의 자본수출이 사실상 “21세기의 공납제”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미가 경제동맹을 맺었다는 정부의 홍보에 나 교수는 “학술적으로 통화동맹이나 관세동맹 등은 경제가 통합되는 단계를 표현하는 것인데, 한미의 경우 경제동맹은 틀린 말”이라며 “상징적으로 쓰더라도, 동맹이라면 쌍방이 독립적 주체로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나 교수는 “트럼프가 내밀 청구서 목록의 끝은 트럼프가 정한다. 우리가 어디까지 받아줘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시기를 “명청 교체기”로 비유하며, 경제와 외교에서 균형과 자존을 어떻게 지킬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미 FTA 폐기 공식 선언, 농업의 전략적 가치 보호,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입법 등 정책 자율성 수호, 경제의 해외 의존성 높이는 정책기조 근본적 전환 등을 촉구했다.

2일 자주통일평화연대에서 주최한 ‘한미정상회담 분석과 과제 모색’ 토론회에서 나원준 경북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자주통일평화연대 제공

토론자들도 한목소리로 안보와 경제 두 측면에서 한미정상회담 결과 깊은 우려를 던졌다. 특히 ‘신의 한 수’로 상찬되는 ‘피스 메이커, 페이스 메이커‘에 대해서도 ”한반도 문제의 주도성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한미동맹의 근본적 문제점에 대해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한다는 주장도 공통적으로 제기됐다.

이연희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무 공동대표는 “이재명 정부가 안보영역에서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계승해 한미동맹 현대화로 포장하고, 이어 미래형 전략동맹이라고 하는 것에 대단히 마음이 아프다”면서 “시민사회가 대미편향 외교가 실패할 것이라고 낙인찍는 것을 넘어 더욱 고민이 깊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함재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자동차와 철강, 조선 등 금속·제조업에서 협력사와 노동자들이 떠안게 될 고통을 조명했다. 그러면서 3일 열리는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에서 세부적인 향후 투쟁계획을 의결할 예정이라며,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영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은 “한미정상회담 이후엔 평가회의가 많았는데 유독 이번엔 거의 없다”면서 명확한 합의문이나 개념 설명이 없는 것에 큰 우려를 표했다. 이 팀장은 “국민주권정부인데 밀실에서 합의가 이뤄지고 있어 우려스럽다”면서 향후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추진될 조치에 대한 집중적인 모니터링 등이 필요하다는 뜻을 나타냈다.

최은아 자주통일평화연대 사무처장은 “한미동맹의 문제점에 대해 국민적 저항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시민사회의 제한성이었다”면서 “이번 회담 과정을 통해 한미동맹의 불평등성, 주권과 평화 침해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미동맹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대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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