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통령 선거 유세가 한창이던 여의도공원. ‘CCP OUT’ 이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맞춰 입은 20대 남녀 6명을 마주쳤다. 그들은 공원의 쓰레기를 주으며 시민들에게 다가가 "중국이 우리 선거를 조작하고 있다"며 설득하고 있었다. 선량(?)했던 이들은 이재명 후보의 선거운동 자원봉사자들과 마주치자 욕설과 비난을 쏟아냈다. 양측은 모두 청년이었고, 큰 충돌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분명 우리 사회의 위험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을 일부의 비이성적인 선동으로 치부한 채, 비난하고 넘겨버리는 것은 쉽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위험한 태도다. 1930년대 독일의 비극은 히틀러라는 한 명의 광인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평생 모은 돈이 휴지 조각이 되고, 내일의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긴 대중의 깊은 절망감이 극단주의라는 괴물을 키워낸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들이 겪는 고통은 당시의 독일의 것과는 속성이 다르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의 본질은 닮아있다.
미래가 봉쇄된 세대
지금 우리 청년들의 현실은 어떤가? 구직 활동을 아예 포기한 '쉬었음' 청년은 50만 명을 넘어섰다. 말이 좋아 '쉬었음'이지 사실상 청년세대 상당수가 ‘장기 실업‘ 상태에 빠진 것이다. 치솟은 집값에 내 집 마련은 꿈꾸기 힘든 신기루가 되었고, 많은 청년이 고시원 같은 불안정한 주거 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고물가 시대에 실질 소득은 줄고,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N포 세대'는 이제 너무나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국가와 시스템이 나를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공정함에 대한 감각이야말로 온갖 음모론이 파고드는 가장 취약한 틈이다.
절망의 탈출구, ‘중국’이라는 희생양
바로 이 틈을 '음모론'이 파고들고 있다. 중국이 대한민국의 선거를 조작하고, 정치를 움직이며,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암약하고 있다는 식으로 퍼져나가는 다양한 형태의 음모론은 복잡한 사회 경제적 문제에 대해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가? 중국이 우리 기술을 훔쳐가기 때문이다." "집을 살 수 없는가? 중국 자본이 우리 땅을 사들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혼란스러운가? 친중 세력이 여론을 조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사는 개인의 고통을 국가적 위기라는 거대한 이야기로 바꾸고, 무력한 개인의 좌절을 '거대한 적과 맞서는 투쟁'으로 포장한다. 특히 현재의 극우 세력은 젊은 세대와의 오프라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는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다.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를 통해 자극적인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나아가 차별금지법, 노란봉투법과 같은 진보적 의제까지 중국과 연관 지어 공격하며, 반중 정서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음모론은 최소한 그들의 고통을 '인정'해준다. "당신이 화가 난 것은 당연하다. 세상이 불공정한 것도 맞다. 그리고 그 범인은 바로 저들이다"라고 속삭인다. 기성 정치권이 청년들의 고통에 제대로 된 설명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동안, 혐오의 정치는 바로 이 '인정'의 힘을 바탕으로 세력을 키운다.
청년 사이에 퍼져나가는 혐오와 극단주의는 정치 현상 이전에 경제적 실패가 낳은 결과물이다. 경제적 실패를 다뤄야 한다는 것이 '청년 극우'를 품어야 한다거나, 그들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음모론이 배태되는 토양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들을 조롱하는데서 그치지 말고, 음모론이 설득력을 갖는 환경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체감하는 경제적 실패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 지금부터 다룰 내용은 필자의 제안이자 의견 중 하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 선고 일주일 만인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를 떠나며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4.11 ⓒ뉴스1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와 청년 일자리 창출
정부 주도의 수출 지향, 재벌 중심의 성장 모델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이 모델이 남긴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다. 국가의 부와 자원은 수출 대기업에 집중되었고,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안정된 '1차 노동시장'과 대다수 청년이 속한 중소기업·비정규직의 불안정한 '2차 노동시장'으로 갈라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2차 시장에서 1차 시장으로의 이동이 거의 불가능한 현실, 이것이 바로 청년들이 겪는 좌절의 근원이다. '한강의 기적'이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불평등의 핵심 원인이 된 것이다.
또한, 수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우리 경제를 외부 충격에 극도로 취약하게 만들었다. 미중 패권 경쟁 같은 외부 변수에 우리 경제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적 불안감은 '중국이 우리 경제를 위협한다'는 식의 음모론이 쉽게 설득력을 얻는 토양이 됐다.
문제는 기존 정치권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냐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변동성 큰 수출 시장에 의존하는 경제가 아니라, 튼튼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스스로 성장하는 경제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이 체질 개선 과정에서 국가가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청년의 만성적인 실업과 고용불안정성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다.
국가 주도의 내수 산업 투자를 진행하는 동시에,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정면으로 겨냥해야 한다. 국가의 재정과 정책 역량을 2차 노동시장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내수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돌봄서비스, 첨단 의료와 같은 분야 또는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과 로보틱스 산업에 대한 투자는 청년 세대의 일자리를 늘리고, 내수 시장을 활성화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전환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소득 격차를 줄이고, 청년들이 대기업에 가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청년들이 음모론 따위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이 아닐까.
8월 2일 인스타그램에서 1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 중국이 한국을 망가뜨리고 있는데 한국이 침묵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