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개인 휴대폰에 대한 디지털포렌식을 동의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서약서를 강요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은 "즉각 철회"를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카카오 측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 것이 아니며, 기존 제도를 보완했다"며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조는 해당 서약서에 동의하지 않으면 사내 시스템에 접속할 수 없는 등 사실상 '강제 동의'를 받고, 업무 외의 정보가 담긴 개인 휴대폰까지 포렌식 대상에 넣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도 근로기준법, 정보통신망법 등 위법 요소가 있을 뿐 아니라 인권 침해 소지도 있다고 지적한다.
19일 카카오 노사에 따르면 카카오는 지난 15일부터 16일까지 전 직원 대상으로 '정보보호/언론대응 가이드 준수 서약서'에 대한 동의를 받고 있다. 해당 서약서에는 '문제 상황이 의심될 경우 개인기기에 대한 포렌식 절차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문제는 이 같은 서약서에 동의를 하지 않으면 업무를 볼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크루유니언)에 따르면 카카오 직원들이 사내 시스템에 접속하기 위해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면 해당 서약서의 동의 페이지로 이동하고,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사내시스템에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했다. 회사가 제안한 서약서에 동의하지 않으면 업무가 불가한 것으로, 사실상 동의를 강제한 셈이다.
노조는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면 업무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설계돼 사실상 강제 동의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해당 서약서에 담긴 내용은 사실상 노동조건 변경에 해당하는 내용이지만, 회사는 노조와 협의 없이 해당 서약서에 대한 조치를 추진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측이 노동조건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노조 등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또한 동의서 내용 중 개인기기에 대한 포렌식 절차에 동의하도록 한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노조는 "사측이 직원들을 잠재적인 영업기밀, 정보 유출자로 특정했고, 구체적인 상황 공유나 조사 없이 직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오는 23일 예정된 카카오의 개발자 컨퍼런스 '이프카카오'를 앞두고 카카오톡 서비스 개편안 등 핵심 정보들이 유출돼 외부 공개된 것이 이번 서약서의 계기가 됐을 것이라 보고 있다.
그러나 노조 측은 해당 사안에 대한 조사도 없었으며, 의심할 만한 계기도 없었다는 입장이다. 카카오지회 박성의 수석부지회장은 "그런 계기라도 있으면 그렇구나하고 알 수나 있었을텐데 갑자기 서약서가 나왔다"면서 "애초에 직원들이 보안 관련한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노조 "사실상 강제 동의"...카카오 "기존 제도 보완 취지" 전문가 "근로기준법 등 위반 소지...인권 침해 요소도"
노조는 사측의 강제적인 포렌식 동의 요구에 지난 17일부터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동의 의사 철회서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철회서에는 "민법 제107조에 따라 당시 동의 의사 표시가 진의가 아니었음을 수신인에게 밝힌다"면서 "동의서의 내용 전체에 대해 동의 의사를 철회 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서승욱 카카오지회장은 "정보유출은 심각한 문제이고 이에 대한 대책은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 만들어져야 하지만 포렌식 조사 대상에 모든 직원의 개인기기를 포함시킨 것은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이라며 사측의 행태를 비판했다.
또 "카카오의 강제적인 포렌식 동의 조항 철회, 사내 공식적인 논의기구를 통한 유출정황조사 및 대책 마련을 요구할 것"이라며 "반복적인 문제 발생을 해결하기 위해선 근본적인 경영쇄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카카오 관계자는 "회사의 중요 자산 보호와 구성원의 보안 인식 제고를 위해 정보보호 관련 준수 서약을 진행한 것"이라며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 것이 아니며, 기존 제도를 보완해 원칙을 명확히 하고, 구성원 모두가 보안 의무를 다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서약만으로 임직원의 기기 열람을 모두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 "별도의 동의 절차 등을 거쳐 시행하게 되며, 대상은 업무 관련 프로그램으로 한정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카카오의 행위가 위법 소지가 있으며 인권 침해에도 해당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최호웅 변호사는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 동의는 자발적인 동의가 돼야 하지만 이번 사례는 강요된 동의라고 볼 수 있다"며 "일반적으로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압류된 동의는 동의로 보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편으로는 근로관계에 있어서 네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며 "노조 등 노동자와 회사가 협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할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자들에 대해 집단적인 강요된 동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노사 간에 근로기준법 등 현행법을 준수하는 절차가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최 변호사는 개인기기까지 포렌식 대상에 포함한 데 대해서는 인권 침해 측면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다고 봤다. 그는 "노동자 개인의 사생활 비밀은 보장받아야 될 헌법상 기본권"이라며 "이 부분을 과도하게 형해화시킬 만큼 침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