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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어느 ‘록저씨’의 고백

청춘의 사운드에서 세대의 공감을 찾아가는 음악 고백

공연하는 콜드플레이 ⓒ유튜브 영상 캡처

나는 ‘록저씨’다. 사실 록을 제일 좋아하는 건 아니다. 포크와 재즈도 록만큼 좋아한다. 실제로는 대중음악의견가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최대한 다양하게 듣는다. 케이팝부터 트로트까지 듣지 않는 장르가 없다. 이름이 알려진 음악가의 신곡과 음반이 나오면 무조건 들으니까 말이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과 팻 메스니Pat Metheny의 ‘Are you going with me?’다. 이 정도면 록저씨라는 조롱을 받을 이유는 없다고 변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음악에 빠져들었던 1980년대 중반 대부분의 음악 마니아는 록에 심취했다. 록이 최고라고 믿었고, 록을 들어야 진짜라고 여겼다. 다섯손가락, 들국화, 부활, 백두산, 송골매, 시나위 같은 국내밴드는 기본이었다. 스콜피온즈Scorpions,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딥 퍼플Deep Purple, 반 헤일렌Van Halen, 퀸Queen, 에이씨디씨AC/DC,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유투U2 정도는 알고 있어야 음악 좀 듣는다고 인정받았다. 본 조비Bon Jovi 정도만 들어서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 데프 레퍼드Def Leppard, 디오Dio, 머틀리 크루Motley Crue,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을 비롯한 여러 헤비메탈 밴드들의 계보와 히트곡까지 알고 있어야 비로소 음악 마니아로 인정받는 느낌이었달까. 그러다보니 록을 듣는데 치중하게 되고, 록에 빠져들며 음악의 정수를 만난다는 희열을 느끼곤 했다.

사실 그 때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 마돈나Madonna가 세계를 평정하던 시대였다.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 왬Wham!, 휘트니 휴스톤Whitney Houston을 비롯한 팝의 인기가 어마어마했다. 그야말로 웰메이드 팝이 넘치던 시절이었는데, 록 마니아들은 팝을 그다지 존중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 록 음악 팬들은 1970년대 후반의 포스트 펑크나 뉴웨이브에도 크게 열광하진 않는 것처럼 보였다. 뭐랄까, 정통 록의 계보를 만들어놓고 록의 일부만 떠받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후 1990년대에 브릿팝과 얼터너티브 록이 각광을 받을 때에는 적잖은 이들이 너바나Nirvana에 열광했다. 알이엠R.E.M., 펄 잼Pearl Jam, 오아시스OASIS, 라디오헤드Radiohead를 비롯한 90년대 영미권 밴드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1970~1980년대의 록을 좋아했던 이들 중엔 90년대 록은 그만큼 좋아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케이팝이 대세가 되고 힙합과 일렉트로닉의 대중음악의 중심으로 부상한 2000년대 이후에는 인디 신에서 좋은 밴드들이 꾸준히 나왔다. 뮤즈Muse, 콜드플레이Coldplay 같은 밴드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유지했지만 그 때는 더 이상 록의 시대가 아니었다.‘록저씨’라는 용어가 나온 건 대략 그 즈음 아니었을까. 유행이 바뀌고, 케이팝에서도 좋은 음악이 나왔으며, 록의 트렌드도 달라지는데 귀를 막은 채 옛날 록이 최고라고 여기는 중년 한국 남성들을 자꾸 보게 되었다. 신촌이나 홍대 앞 음악 바와 펍에 가서 늘 똑같은 곡만 신청하는 이들. 록 페스티벌에 옛날 록 밴드들이 오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이들. 그래서 몇 몇 가게에서 아예 신청 금지곡 리스트를 만들게 해버린 이들 말이다.

제이슨 본 햄·로버트 플랜트·존 폴 존스·지미 페이지, 헤비메탈 그룹 '레드제플린' ⓒ뉴시스


그런 이들에게 세상에 좋은 음악이 얼마든지 많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록만 좋은 게 아니고, 알앤비나 힙합 중에도 좋은 음악이 많다고, 새로운 록스타도 계속 등장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경험이 확장되고 취향이 바뀌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소년기에 꽂힌 음악을 평생 반복해서 듣는다고 하지 않나. 그 음악들이 가장 인상적이었으며, 가장 오래 함께 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음악과 함께 한 수많은 순간들이 떠오르는데, 사적인 서사가 쌓이지 않은 음악이 아무리 좋다한들 어찌 당해낼까. 나도 어쩌다 청소년 때부터 들었던 곡들을 다시 들을 때면 가슴이 뭉클해지곤 한다. 요즘 노래들이 아무리 좋아도 가슴이 뭉클해지진 않는다. 나에게 최고의 록음악은 ‘Stairway to Heaven’인데 아무리 많은 록 음악을 들어도 바뀔 가능성은 전무하다.

물론 뭐든 다양하게 체험하고 열린 마음으로 판단하는 게 가장 좋다. 그렇게 하려면 꾸준히 시간을 들이고 경험을 쌓으면서 변화를 수용하고 감각을 확장해야 하는데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 나이 들어가면서 음악을 듣는 일조차 사치가 되기 일쑤다. 평생 음악마니아로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음악마니아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래서 록에 경도된 특정 세대 남성을 놀렸던 이들이 시간이 흐른 뒤 ‘힙저씨’나 ‘케저씨’, 혹은 ‘케줌마’ 같은 단어로 불리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 록저씨들에게 흥미로운 사건은 최근 록 페스티벌에 젊은 관객들이 몰리는 현상이다. 록이 비주류가 되다보니 경험하기 어려웠던 체험이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이고, 좋은 록음악이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록 밴드를 보기 위해 수만 관객이 운집하고, 수 십 년 된 밴드가 한참 활동할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이들이 열광하는 모습은 조금 놀랍다. 아직 록의 시대가 돌아왔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고, 실제로 한국에서 록의 시대였던 적도 없었지만 록 마니아들이 뒤늦게 명예회복되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 정도면 유행은 돌고 돌며, 좋은 음악은 결국 통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록이 음악마니아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시대는 몇 몇 음악가들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신화와 전설이라는 호칭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개성 있는 음악으로 일가를 이룬 록 음악가들은 무수히 많다. 그 금맥들을 천천히 찾아가며 발견하는 재미를 알아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 쪽 귀는 록에, 다른 한 쪽 귀는 다른 음악에 할애해도 충분하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겠지만 괜히 덧붙이는 록저씨의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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