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명숙칼럼] 트럼프의 극우이민정책에서 배워야 할 것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주노동자정책에서 드러난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가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을 기습 단속·구금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2025.9.6 ⓒ뉴스1


‘슬픔의 평등한 얼굴’, ‘무관심한 사랑’··· 드라마를 보다가 정호승의 ‘슬픔이 기쁨에게’ 시구가 가슴을 후벼팠다. 왜 우리의 요구는 항상 자신의 지인과 가족, 그리고 한국에만 머물러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수 많은 뉴스들이 국내에 한정되어 있기도 하고, 교육과 일상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부추기기 때문이 아닐까.

얼마 전에도 우리의 이중잣대, 국가주의의 이중성을 깨닫게 한 사건이 있었다. 9월 4일 미국조지아주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 등이 조지아주 서배나의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내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불법체류자라며 한국인 300명을 구금한 사건이다. 구금 중 약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고, 구금된 장소에서는 벌레가 들끓고 변기가 막히는 열악한 곳이었다.

미국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구금된 한국인들은 대부분 단기상용비자(B1)나 전자여행허가(ESTA)로 입국한 이들로 비자문제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최대 6개월 체류하는 비자라로, 이들이 전문직 취업비자(H-1B)나 주재원비자(L1·E2)를 받지 않고, 취업이 금지된 단기 비자로 현지에서 일했기에 불법이라는 것이다. 비자형태를 근거로 벌인 폭력적 구금의 이면에는 한국 정부에 투자 압력을 주기 위한 실력행사라는 분석도 나왔다.

아무튼 미국에 공장을 건설해서 일자리를 만들라고 압박하던 미국이 행한 행태에 많은 한국인들이 분노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강제 단속과 추방은 수십년간 이어진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 조지아주 구금사건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정호승의 시구처럼 우리의 분노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고용허가제 때문에 미등록상태가 된 이주노동자들을 강제단속하는 경우가 많다. 강제단속을 피하다가 추락해 죽어간 이주노동자가 얼마나 많은가. 강제 추방으로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이주노동자가 얼마나 많았던가. 형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이주민제도로 체류자격이 초과한 것일 뿐인데도 항상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체류자’라고 명명하며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 한국 정부의 행태다.

한국 땅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주노동자 강제단속


얼마 전 울산에서도 강제단속으로 50명의 이주노동자가 끌려갔다. 9월 16일 울산의 현대차 모듈화단지 내 자동차부품업체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를 토끼몰이식을 단속해서 다치기까지 했다. 미란다원칙 고지 등도 없이 무작정 연행했고 나중에 풀려나긴 했지만 마구잡이식 단속으로 미등록이 아닌 사람도 연행됐다. 그 후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주거지에서 퇴근하는 노동자 3명을 잡아갔다. 청주에서는 두 명의 어린 자녀들이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단소그 추방했다. 이주민단체에서 자녀가 있으므로 일시 보호 해제를 요청했지만 듣지 않았다. 법무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12일부터 9월 12일까지 한 달간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정부 집중단속을 해서 총 4,617명을 강제퇴거 했다. 그리고 그것을 성과인 양 자랑하듯 보도자료를 내는 정부다.

민주노총 이주노동자평등연대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 국정과제 수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07.15. ⓒ뉴시스


규모는 적지만, 타국에서 일하는 한국노동자들도 비슷하다. 세계 곳곳에서 일하는 한국 국적의 노동자들이 강제 추방되고 있다. 10월 3일 더불어민주당 이재강 의원(의정부시을)이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전 세계에서 추방당한 한국인은 209명이다. 세계 각국의 이주민 배제적인 정책이 문제인 것이다. 며칠 전 미국에서 발의된 ‘한국동반자법’(한국인에게 연간 최대 1만 5천개의 전문직 취업비자(E-4)를 발급하도록 하는 정책)만으로는 한국에서 건너간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단속과 추방을 막기 어렵다.

극우정책의 핵심, 이주민배체


미국 트럼프의 이주민 배제정책은 이번만이 아니다. 그가 이전에 대통령으로 있을 때도 그랬듯이 그는 자국 내 자본의 초과이윤과 그로 인한 노동자들의 삶의 곤궁함의 원인을 이주민에게 돌렸다. 그런 방식으로 자국 자본과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어왔다. 자본의 위기를 민중들이 타국적의 노동자에게 돌리도록 하면서 극우정치를 이어가는 것이다. 또한 제국주의 국가답게 자신보다 경제력이 아래인 국가들을 착취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제는 관세를 통해 이른바 경제선진국에게도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자신이 태어난 땅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전쟁과 자국내 정치학대, 기후위기로 이주민은 1억 명이 넘는다고 한다. 경제위기 등으로 전 세계에 극우정책이 확산되면서 이주민배제적인 정책이 확산되고 있다.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린 상태이긴 하지만 난민에 우호적이었던 독일도 난민추방정책을 내세웠다. 프랑스 정부도 2월에 추방 절차 간소화와 비자 요건 강화 등의 이주민 단속을 강화하는 새로운 이민법을 도입했다. 이주민 혐오로 당선된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유럽의 각국 선거에서 항상 이주민 배제적인 정책이 쟁점으로 떠오르는 현실이다. 자본이 국경을 넘듯이, 경제적 이유로 이주노동을 하는 것이 과연 나쁜 일인가. 더나은 삶을 향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고용허가제 등의 이주노동자정책 전향적으로 개선해야


이재명 정부가 벽돌공장에서 일하던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괴롭힘 사건 이후 이주민 정책을 개선하라고 지시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여전히 선이 그어 있어 답답하다. 한국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중심으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대량 양산하고 있는 정책을 근본적으로 갈아엎지 않고는 단속 추방되는 노동자들은 늘어갈 수밖에 없다.

3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역 인근에서 열린 자유대학 주최 혐중시위 모습. 2025.10.03 ⓒ뉴시스


얼마 전 2020년 12월 영하 20도에 난방장치 없는 비닐하우스에서 죽어간 속헹님에 대한 국가배상 인정 2심 판결이 있었다. 이주노동이 필요해 데려왔으면서도 부적절한 기숙사에 일하도록 한 국가책임을 인정한 만큼,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부정해서 미등록이주노자들을 양산하는 고용허가제도는 바뀌어야 한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임금체불을 관리감독하지 않는 현행 이주노동자정책과 체류자격별로 일자리를 제한하는 복잡한 비자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도 극우세력은 ‘부정선거’ 운운하며 혐중시위를 하고 있다. 혐중정서의 기반은 이주민 배제정책임을 상기해야 한다. 또한 이주민혐오의 기반이 되고 있는 것도 차별적인 이주노동자정책이다. 단지 국적이 다르다고 반말과 폭언을 하며 임금을 체불하는 것이 일상인 현실에서 이주민들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긴 힘들지 않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비상계엄으로 극에 달한 극우정치가 윤석열을 쫓아냈다. 우리가 4개월동안 광장에서 외친 민주주의는 단지 한국 국적의 사람들만 인권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제한된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국적과 인종을 떠난 한국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인권을 누릴 수 있는 민주주의를 바란 것이다. 실제 광장에서 이주노동자도 자리했으며 유학생들도 함께 평등과 자유를 외쳤다. 자본의 자유가 아닌, 모든 이의 자유와 인권이 광장에서 외친 민주주의였음을 이재명 정부는 깨닫고 이주민 정책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눈 그친 눈길”을 모두가 함께 걸을 수 있다. 그래야 한국인들 300명이 구속되어 가족과 지인들이 슬퍼하고 분노했던 그 힘이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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