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압박 넘어서지 못했다...대미투자 3천500억 달러 최종 타결

한미정상회담 결과, 10년간 200억 달러씩 나눠 지급하기로...나머진 조선업 투자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5.10.29. ⓒ뉴시스

한국과 미국이 29일 대미 투자의 세부 내용에 합의했다. 한미는 총 3천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관한 세부 사항을 두고 약 3개월 동안 줄다리기를 해왔는데, 결국 한국이 미국의 투자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결과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저녁 경주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미국과의 관세 협상의 세부 내용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7월 30일 한국의 상호 관세 및 폼목 관세 인사, 대미 투자 확대를 골자로 하는 한미 관세 협상을 큰 틀에서 타결한 바 있다. 합의 결과로 상호 관세는 8월 7일부터 15%로 인하됐으나, 자동차 관세는 합의한 대로 곧바로 인하되지는 못한 상태였다. 3천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패키지의 구조, 수익 배분 등 세부 조건에 이견이 있어 후속 협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정부는 산업통상부를 중심으로 미국 상무부와 23차례에 걸친 장관급 회담과 수많은 실무회의를 통해 미국과 협의를 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리는 한국에 국빈 방문하는 계기로 관세 협상이 타결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실제 정부는 APEC 전에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목전에 둔 시점에도 한미 간 의견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타결이 임박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달리,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들이 이번에 타결이 어려울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으면서다.

이날 경주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은 약 두 달 만에 다시 이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80분 넘게 회담이 이어졌고, 예상을 깨고 관세 협상이 타결됐다. 김 정책실장은 브리핑에서 "(정상회담) 당일 날, 우리로서도 (협상이) 급진전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변한 건 없다. 3천500억 달러라는 대미 투자 규모 자체는 그대로이다. 다만 대미 투자금을 현금으로 한번에 지급하는 것이 아닌, 여러 차레 나눠 지급하기로 한 것은 이전보다 진전된 부분이다. 애초 한국이 미국에 요구해온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대신한 일종의 '안전장치'로 볼 수 있다.

김 정책실장은 "대미 금융투자 3천500억 달러는 현금 투자 2천억 달러와 조선업 협력 1천500억 달러로 구성된다"며 "일본이 미국과 합의한 5천500억 달러 금융 패키지와 유사한 구조이지만 우리는 연간 투자 상한을 200억 달러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간 200억 달러의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투자하기 때문에 우리 외환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에 있으며,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마스가 프로젝트'로 명명된 조선업 협력 1천500억 달러는 한국 기업의 주도로 추진하고, 투자 외에 보증도 포함하는 것으로 합의됐다.

하지만 투자 원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 정책실장은 "원리금이 보장되는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양해각서(MOU)에 명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상업적 합리성'을 따질 때 우리 정부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미 양국은 투자위원회를 만들고 구체적인 투자 프로젝트를 협의하기로 했는데, 결국 투자 결정권은 미국의 손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수익 배분도 우리에게 유리한 구조는 아니다. 김 정책실장은 "우리가 원래 희망했던 그 숫자를 마지막에 아주 명확하게 넣지 못한 건 약간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원리금 상환 전까지 한미 간 수익을 5대 5로 배분하되, 20년 내에 원리금을 전액 상환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면 수익배분 비율도 조정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합의에 따라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자동차 관세는 미국이 요구하던 25%에서 15%로 인하된다. 상호 관세는 지난 7월 말 합의 이후 이미 15%가 적용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우리의 주된 경쟁국인 대만과 대비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관세는 이전보다 대폭 올랐는데, 거기에 엄청난 규모의 투자까지 일방적으로 하게 된 꼴이다. '국익을 위해 버티던' 이 대통령도 미국이라는 높은 장벽을 넘어서지 못한 결과다.

그나마 다행인 건 쌀·쇠고기를 포함한 농업 분야 추가 개방 압박은 방어한 것이다. 또 품목관세 중 의약품·목제 등은 최혜국 대우를 받고, 항공기 부품·제네릭(복제약) 의약품·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천연자원 등에는 무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고 김 정책실장은 밝혔다.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과)는 "외환시장에 굉장히 불안정한 요소가 커졌다"고 평가했다.

나 교수는 "우리의 외환 보유고 규모가 IMF 등 여러 국제 권고 기준에 비추어서 좀 부족한 편이다. 서로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연간 약 30조 원(약 200억 달러) 정도가 (미국으로) 나가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나 교수는 "우리 예산이 660~670조 원 정도인데 (여기서 30조 원은) 상당히 큰 규모"라며 "게다가 우리 경제 상황에 따라서 줄 수 있는 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시점에 협의회를 가동시켜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경제 여건과 상관없이 외화 유출이 일어날 것"이라며 "그런 맥락에서 외환시장의 불안정 요소가 확대될 소지가 상당히 크다"고 설명했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