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은 29일 열린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3개월을 끌어온 관세 및 대미투자에 관한 세부 계획에 합의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한미 간의 최대 쟁점이었던 '3500억 달러' 투자와 관련해 "현금 투자는 2000억달러, 조선업 협력 1500억달러로 구성"되며, "2000억달러 투자는 한 번이 아니라 연간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양국은 합의가 실행되기 시작하면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반도체의 경우엔 대만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또 의약품·목재 등은 최혜국 대우를 받고, 항공기 부품·복제약·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천연자원 등에는 무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이번 협상의 본질이 트럼프의 '날강도'짓이라는 점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멋대로 관세율을 높인 다음 이를 낮춰주면서 대미 투자를 강요했다. 대개 투자라면 자금을 투입하는 쪽이 주도권을 쥐고 사업을 풀어나가야 하는데, 미국 정부는 "자신들 마음대로" 이 투자금을 사용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손해가 나면 한국정부가 감당하고, 이익이 나면 반씩 나누자는 것인데, '날강도'라는 표현 이외에는 이를 설명할 단어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떠들어댄 3500억 달러의 현금-선불이란 요구는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허세와 엄포에 불과한 이야기가 10년간 매해 200억 달러로 현실화된 것이니 잘했다, 못했다를 논할 수 없다. 반면 투자처의 선정이나 이익의 분배에 관해서는 미국 측의 주장이 그대로 관철됐다. 일각에서는 관세와 관련된 불확실성 해소를 성과로 드는 데, 트럼프 대통령의 말 바꾸기를 보면 관세 문제가 다 끝났다고 믿기도 어렵다.
다만 협상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미국에 줘야 할 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준비자산을 다른 목적으로 전용해야 하는데, 이는 현행 법체계에서 불가하기 때문이다. 재정이 직접 투입될 수 있는 부분도 따져봐야 한다. 결국 특별법이건 비준동의건 국회로 공이 넘어올 것인데, 국회는 국민과 함께 이번 합의를 조목조목 들여다보고 국민의 뜻을 물어 찬반을 정해야 한다. '날강도' 트럼프에 맞서는 힘은 결국 국민으로부터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