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시간과 돈으로 환산된다. 보통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죽음과 애도의 형식은 장례식장 내 마련된 차가운 침대 위에서 가족들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목도하고, 울고, 보내 드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자신의 집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애도의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다. 죽음을 감각하는 힘과 애도의 필요성이 축소되어 가는 시대 속에서 '목련 풍선'은 죽음과 애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작품 속 분옥은 떨어져 죽어버린 목련 꽃에 숨을 불어넣는다. 죽은 것에 숨을 불어넣는 행동 뒤엔 잊힌 이들, 이미 떠난 이들의 이야기가 함께 피어오른다. 세상을 떠난 영진 이야기도 나오고, 대문을 열고 환대하며 살았던 분옥 모의 이야기도 나온다. 뺑소니 당한 손녀의 이야기도 나온다.
이렇듯 죽은 목련 잎에 산 자의 숨을 불어넣는 행위는 작품 시작부터 끝까지 종종 등장한다. 그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과 부재를 감각하고 애도하는 한 행동이다.
'목련풍선' 속에서 관객은 현대 사회에선 이미 말라버린 애도와 환대의 힘을 목도하게 된다. 근데 그 보여줌의 방식이 직접적이지 않다. 그래서 좋다. 애도하는 마음과 누군가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 두는 환대는 퀴어 관계에 있는 두 사람과 비혈연 가족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갈등을 무너뜨린다. 그 붕괴의 과정은 폭력적이지 않고 따뜻하고 다정하며 또 슬프다.
여기에 긴장, 대립, 갈등을 끊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만가(輓歌)는 이미 부재한 이들의 존재를 상기하게 만든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우리가 죽음을 대했던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너무 쉽게 잊은 것은 아닌지, 혹은 쉽게 잊힌 것은 아닌지, 애도할 여유는 있었던 것인지, 감각의 시간이 찾아온다.
배해률 작가가 작품을 썼고, 윤혜진 연출가가 연출을 맡았다. 홍윤희 이윤재 윤현길 신윤지 라소영 김하람 김광덕 권은혜 배우가 출연했다.
연극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갔을 때' ⓒ국립극단 온라인극장, 보편적극단
또 다른 기획 초청 작품은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갔을 때'다. 국가에 의해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삶과 가족을 통째로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른 누군가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한 줄 혹은 한 장면으로 설명돼 왔던 사람들의 삶 말이다.
연극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갔을 때'는 힘이 센 연극이다. 이 작품은 간첩 누명을 쓴 후 삶과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뼈아픈 연대기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 1969년 달에 착륙해 박수소리가 들리던 날, 압박에 못 이겨 결국 빨갱이임을 인정한 임운상 씨의 사연을 시작으로 다양한 인터뷰이들의 인터뷰가 시작된다. 임운상 씨를 포함해 김선자 씨, 김오수 씨, 김영국 씨 등이 간첩으로 투옥된 과정을 소상히 이야기한다.
켜켜이 쌓아 올려지는 피해자들의 증언은 무너져버린 삶의 터전과 붕괴된 가족의 단면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무대 뒤로 게시되는 수많은 사건들은 피해자의 증언이 단순히 개인의 증언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비뚤어진 칼날을 드러내는 것임을 이해하게 만든다. 동시에 우리 시대의 아픈 한 단면도 맞닥뜨리게 만든다.
'닐 암스트롱'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증언에서 멈추지 않고 피해자들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해야 할 일들과 미래 세대의 모습을 그린다. 피와 눈물로 쓴 연대기 속에서 새롭게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이들의 모습은 슬프고도 단단하게 빛이 난다.
이보람 작가가 작품을 썼고, 마두영 연출가가 연출을 맡았다. 이윤재 김정아 신강수 김진복 문현정 송철호 강정윤 이세영 배우가 출연했다.
'목련풍선'과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갔을 때'는 2024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에 선정된 연극이다.
두 작품은 지난 9월 29일 기획초청 작품으로 국립극단 온라인극장에 공개됐다. 현재 국립극단 온라인극장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