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한미정상회담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결정이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자국 조선업 부활을 자축했고, 같은 자리에서 한국의 대미 투자와 관세 협상 타결도 함께 언급했다. 한쪽에선 ‘군사동맹의 심화’라 포장되지만, 다른 쪽에선 ‘안보와 통상이 뒤섞인 거래’라는 의구심이 일어난다. 민감한 군사기술 이전과 거대한 투자·구매 패키지가 한 묶음으로 등장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
핵추진잠수함 도입의 의미는 분명하다.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더라도, 원자로를 동력으로 쓰는 잠수함은 연료보급 없이 장기간 잠항할 수 있고 소음이 적어 탐지가 어렵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협이나 중국 해군의 활동 확대에 대응한다는 논리가 작동한다. 그러나 이 무기는 단순한 방어체계가 아니다.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 전체의 전략균형을 바꾸는 ‘핵연료의 군사화’에 발을 들이는 일이다. 그동안 한국이 유지해온 ‘비핵화 원칙’의 상징적 균열이기도 하다. 핵연료를 평화적 용도에만 쓰겠다는 1991년 남북공동선언에도 저촉된다.
냉철히 따져볼 일이다. 동해와 서해는 길게 잡아도 3~4시간이면 동서로 가로지를 수 있는 좁은 해역이다. 중국이나 대만 등 주변국을 대상으로 한 작전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면 잠수함이 장기간 잠항해 태평양 깊은 곳까지 움직일 일은 드물다. 한편으로 핵추진잠수함은 건조와 운용, 폐로까지 막대한 비용이 들고, 핵연료 사용에 따른 국제적 감시와 외교적 부담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중국과 일본, 북한이 이를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한다면 동북아는 새로운 군비경쟁의 소용돌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이미 핵잠수함 도입을 거론했고, 북한은 ‘한국도 사실상 핵무장했다’며 전술핵 강화의 구실을 찾을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의 명분을 허무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그러니 이번 발표는 정상회담의 외교적 성과가 될 수 없다. 핵추진잠수함 승인 소식과 관세 협상, 수천억 달러의 투자 약속이 한 밥상 위에 올랐다. 안보와 경제를 교환하는 듯한 거래 구조는 손익을 따지기 어렵게 만든다. 돈을 내고 안보를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번 합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결정인가. 정부는 자주국방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고 주변국과의 신중한 외교로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