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젊은 노동자] 공대 대학원생인데 노조원입니다

편집자주

2030 노동조합원들이 쓰는 새 칼럼 ‘젊은 노동자’ 연재를 시작합니다.
젊은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고충, 노동조합에 대한 기대를 담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LG연구동에서 열린 가상(VR),증강(AR), 혼합현실(MR) 겸용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수업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자료사진) 2021.5.27 ⓒ뉴스1

나는 국립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20대 여성 대학원생이자, 민주노총 공공운수 사회서비스 노조의 지부 중 하나인 전국 대학원생노조의 조합원이다. 이렇게 소개하면, “대학원생도 노조가 있어요?”, “대학원생은 학생 아닌가요?” 하는 반응이 가장 흔하다. 이공계의 경우 출퇴근을 하고 연구실의 과제 수행 및 학생 조교 등의 노동을 수행하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대학원생은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래도 2023년 노동위원회에서 대학원생도 ‘노동권을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라는 첫 판정이 나오는 등 조금씩 노동자성이 인정되는 사례도 늘고 있지만, 아직 대부분은 대학원생이 노동자라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학원생도 노조가 있어요?”, “대학원생은 학생 아닌가요?”

대학원 연구실은 학교마다 다르고, 전공마다 다르고, 교수님의 성향과 연구실의 규모에 따라서도 다르기 때문에 공통된 기준을 찾기 어렵다. 크게는 인문계와 이공계만 해도 출퇴근 개념과 하는 일이 다르다. 나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실험 연구를 주로 하는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다. 위험 물질로 분리되는 화학 약품, 고압가스, 실험을 위한 온갖 기계 장비. 특히 온도를 조절하는 장비의 경우 고온과 저온을 넘나든다. 실험 과정 중의 안전도 노동자로서 중요한 쟁점이지만, 실험을 위한 장비 및 약품을 관리하고 교내의 안전 점검에 대응하는 일까지도 노동에 포함된다.

성과가 나지는 않지만, 실험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한 관리와 관련 부서 및 업체와의 소통은 마치 돌봄 노동을 연상시킨다. 가정의 생활용품 재고를 확인하고, 매번 채워놓고, 다 쓰면 치우고. 그런 것들이 힘들어 봤자 얼마나 힘들겠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잘해야 티는 안 나고, 손을 놓으면 티가 나서 결국 문제가 되는 일은 피로를 동반한다. 대학원에도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고, 이 일은 공식적으로 대학원생에게 요구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신경 쓰는 사람만 계속 신경을 쓰는 구조로 돌아간다. 나의 경우는 내가 직접 나서서 이 일을 전담하기로 했음에도 같은 연구실 구성원들의 협조가 없을 때는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이 일을 더 한다고 해서 인건비를 더 받지는 못한다. 이 일을 한다고 노동자라고 주장하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학원생에게 요구되는 노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연구실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은 보통 국가 과제와 기업 과제를 수행해야 들어올 수 있다. 국가 과제는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지만, 과제 제안서를 작성해야 하고 심사를 거쳐 과제가 선정되어야만 진행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주력 기술이나, 유행하는 기술들을 제치고 선정되는 것은 쉽지 않다. 만약 과제에 하나도 선정되지 못하면 연구실은 학생연구원에 줄 인건비를 확보할 수 없다. 그러면 인건비는 어떻게 하냐고? 그때부터는 다시 행운에 기대야 한다. 교내의 성적 우수 장학금 등의 사업에 지원해서 돈을 받거나, 교내 연구과제를 신청하여야 한다. 다른 기관과 같이 할 수 있는 과제를 따오거나 용역을 받는 등 교수님의 역량에 달려있기도 한다. 그것도 교수님을 잘 만나야만 가능한 경우다. 교수님이 어떻게든 인건비를 마련해주시면 받을 수 있는 거고, 학생연구원의 인건비에 관심이 없으시면 언제까지 그 생활이 이어질지 모르는 채로 인건비를 받을 수 없다. 현행법상 인건비가 석사는 220만 원, 박사는 300만 원 이상을 받도록 정해져 있지만, 줄 돈이 없으니 받을 수가 없다. 연구실에 과제가 있어도 한두 개로는 법적 인건비를 받는 것이 어렵다.

2020년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사람(대학원생을 포함함)’이라는 문구가 추가되며 이제 사람으로는 봐준다는 자조적 농담을 하기도 했었지만, 여전히 최저시급조차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한 기업 과제에 해당하는 실험 용역은 장기인 경우도 있지만 단기로 실험만 요구되는 경우가 많으며 해당 경우에는 인건비는 책정이 안 되기도 하여 일은 늘지만, 인건비는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실정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해도 그 또한, 최저임금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다른 학교의 경우는 모르겠으나, 우리 학교는 등록금을 전액 장학금으로 해주는 제도가 있고, 해당 경우에는 학과장과 학생연구원 간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어 있다.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장학금 지급을 이유로 요구하는 학생 조교, 교육 조교, 실험 조교를 포함한 노동시간은 주 20시간으로 책정이 된다. 2025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주 20시간씩 4달(3월~6월)을 따지면 딱 한학기 등록금 정도가 된다. 근로계약서는 딱 등록금까지만 책정이 되어있으니 그 외 시간은 보장되는 인건비 없이 연구실 사정에 따라서 달라지며, 보통은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 관악구 국제백신연구소(IVI)에서 연구원들이 콜레라 및 장티푸스 백신 실험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2020.07.08. ⓒ뉴시스

학생 연구원 노동자로 인정하고, 학교가 최저임금 보장해야

2025년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서 이공계 연구생활장려금으로 인건비를 못 받는 학생 연구원들의 최저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는 노동 임금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역시 최저임금에 달하지는 못한다. 또한, 아직 대상이 아닌 학교도 많다. 결국은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 학교가 대학원생들의 현실적인 노동시간을 포함하는 근로계약서와 노동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학부 연구생은 아직 대학생이다. 그들은 대학원생이 되기 위해서 연구 노동에 참여하지만, 더욱더 노동자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인건비 역시 교수님을 얼마나 잘 만났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지 자체가 결정된다.

연구실 단위로만 인건비 지급을 맡길 게 아니라 학교의 발전을 위하여 연구를 수행하는 학생 연구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학교가 최저임금의 인건비를 보장해야 한다. 행운이 아니어도 노동자로서 권리를 인정받을 때 더 질 높은 연구가 가능하고, 연구 인력의 양성이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교수님을 잘 만났기에 그래도 인건비를 받으며 다니고 있다. 하지만 교수님을 잘 만나지 못했더라도, 대학원생 역시 노동자로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날이 오도록 투쟁하기 위해 노조에 가입했다. 대학원생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도 이미 연구 노동을 하며 존재하고 있다. 단순한 밈적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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