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택배노동자의 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대화 과정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이 제시한 ‘심야배송 제한’ 대책이 논란으로 비화하고 있다. 경제지를 중심으로 일부 언론이 택배노조의 제안을 마치 소비자의 편익을 외면하는 과도한 횡포처럼 묘사하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 일부 정치인들이 이 흐름에 가세하면서다.
하지만 여기서 빠진 논의가 있다. 택배노조가 왜 심야배송 제한을 제안했는지다. 심야배송의 편리함은 꼭 택배노동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이뤄져야만 하는 것일까. 택배노조의 제안은 이 고민에서부터 출발한다.
택배노조 제안은 심야배송 ‘금지’가 아니다
택배노조의 제안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주도한 택배 분야 사회적대화기구(택배 사회적대화기구)에서 나왔다. 택배 사회적대화기구는 쿠팡 택배노동자로 일하다가 과로로 숨진 고 정슬기 씨의 사망사건으로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다시금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고, 앞선 사회적합의에서 논의하지 못한 심야·휴일 배송 문제를 노사정이 함께 해결하기 위해 출범한 것이다. 사회적대화기구 출범 당시 내세운 슬로건이 ‘속도보다 생명’인 이유다.
우선 전제해야 할 건 지난 22일 1차 회의에서 택배노조가 제안한 내용은 일부 언론에서 호도하는 것처럼 ‘새벽배송 전면 금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택배노조 설명에 따르면 쿠팡 심야배송 택배노동자들은 보통 저녁 8시 30분, 밤 12시 30분, 새벽 3시 30분 등 하루에 3차례 캠프에 들어가 물품을 분류하고 싣고 나와 배송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택배노조는 이 중 가장 위험한 초심야 시간대인 밤 12시~새벽 5시의 배송 업무를 제한하는 대신, 현행 밤 12시 30분, 새벽 3시 30분께 이뤄지고 있는 2회차 배송을 새벽 5시 이후에 배송하는 것으로 변경하자는 것이다. 주·야 배송을 오전 5시 출근조와 15시 출근조로 조정하는 방식이다.
또한 기존 택배 분야 사회적합의 내용이자 택배노동자 과로 원인으로 지목된 분류작업 등을 쿠팡 택배노동자의 업무에서 배제하고, 일찍 배송해야 하는 긴급 품목을 선정해 배송하면 지금처럼 소비자들은 오전 7시까지 물품을 받아보는 데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택배노조는 보고 있다.
“야간노동 시간 단축만으로는 부족, 야간 노동 위험 이미 의학적으로도 증명”
택배노조가 이같은 제안을 한 이유는 쿠팡의 장시간, 고정적인 심야배송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쿠팡 관리자의 배송 압박에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고 답해야 했던 고 정슬기 씨를 비롯해 지난해에만 3명의 쿠팡 택배노동자가 심야배송으로 숨진 것으로 노조는 파악하고 있다.
실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송관철 연구위원이 이달 발표한 679명의 쿠팡 택배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쿠팡 심야 택배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산업재해 판정기준인 30%를 가산할 경우 주 60.5시간(주 5일 근무 가정)으로 나타나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야간 배송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피로(71.9%), 교통사고 위험(62.3%) 등으로 조사됐으며, 65.3%의 야간 배송 노동자들은 수입이 일정한 정도 보장된다면 심야시간을 피해 근무하고 싶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송 연구위원은 “야간 노동이 계속되면 피로 누적, 각성의 저하, 회복 시간의 부족 등으로 인해 낮시간 노동에 비해 야간 노동 시 사고 발생 위험은 30.4% 증가하는 점, 연속적으로 야간 노동하는 경우 사고 위험이 첫날을 기준으로 둘째 날에는 6%, 셋째 날에는 17%, 넷째 날에는 36%가 증가하는 점, 산업안전보건법상 월 평균 60시간 이상 야간 노동을 하는 근로자에 대해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퀵플렉스(쿠팡 택배노동자) 야간 노동자는 월이 아니라 매주 또는 격주 60시간 내외로 노동하고 있어 이미 법정 기준을 상회한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퀵플렉스 노동자의 생명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야간 노동을 줄일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는 사고 위험이 가장 높은 심야시간의 배송을 금지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택배노조는 당초 야간 노동 시간을 줄이는 방식을 고민했지만, 다수 직업환경 전문의들에게 의견을 구한 결과 야간 노동 시간 단축만으로는 과로사를 방지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국제암연구소는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고, 쿠팡 택배노동자들과 같이 연속적인 고정 심야노동은 생체 리듬을 파괴해 수면 장애, 심혈관 질환 등 심각한 건강 문제를 유발한다는 이유에서다.
택배노조 한선범 정책국장은 31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야간노동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미 의학적으로도 증명이 된 이야기”라며 “다른 심야노동의 경우 교대제를 하기도 하지만, 쿠팡은 그렇게 하기 힘든 구조다. 심야배송의 위험을 없애기 위해서는 주간 연속 근무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새벽배송의 경우 오전 5시부터 긴급한 품목을 중심으로 배송하는 방식으로 하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국장은 “저희의 제안은 새벽배송을 완전히 폐지하자는 게 아님에도, 의도적으로 (왜곡해) 보도가 이뤄지면서 논란이 된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번 사회적대화는 소비자의 편익과 택배노동자의 건강권이 균형을 이루는 합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갈림길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