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큰 빚 졌다” 현대차 등 대기업, 국민에 빚 갚는 방법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1일 이재명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관세 관련해 너무 감사드린다. 정부 분들이 너무 잘하셔서 제가 큰빚을 졌다”고 고개를 숙였다. 한미 관세협상 합의로 25%였던 국내산 자동차의 대미수출 관세가 조만간 15%로 내릴 예정이다. 수천억원의 관세 부담과 가격 경쟁력 하락 등으로 미국 시장에서 고전하던 현대차그룹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이번 관세협상의 중요한 압력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25% 관세에 있었다. 사태가 악화할 경우 반도체 등에 관세보복이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따라서 자동차와 반도체 등의 핵심산업을 지키기 위해 국민들이 총 3500억 달러의 대미투자를, 그중 2500억 달러의 직접투자를 부담한 셈이다. 정말 “큰 빚”이다. 대미투자가 이대로 진행된다면, 대기업에게는 상당한 수익 창출 기회가 생긴다. 우리 정부의 투자와 보증으로 미국에 진출해 공장을 세우고 판매망을 확보하게 된다. 손실을 본다 해도 우리 정부가 부담하게 된다. 이 역시 ‘큰 빚’이다.

조선을 포함한 미국 제조업 부활을 목표로 한 사실상의 투자 강탈은 결과적으로 국내 제조업 기반을 붕괴시킬 우려가 크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야 일부 손실이 있더라도 미국에 새로운 생산기반을 만들어 이를 상쇄할 기회가 생긴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결국 피해는 해당 기업의 국내 노동자들, 하청과 납품 등 거래업체와 그 노동자들, 세수 손실로 인한 납세자인 국민들이 안게 된다. 그렇다면, 정의선 회장을 비롯해 대미투자와 관세협상 타결로 이익을 보게 된 기업과 경영인들은 어떻게 빚을 갚을 것인지 보다 분명히 밝혀야 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국내 일자리를 지키고, 제조업 기반을 강화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 직접고용 노동자는 물론 직간접 관련이 있는 업계 노동자들이 대미투자로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첨단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이를 우선 적용해 경쟁력 있는 제품이 한국에서 생산되도록 해야 한다. 판매를 위한 수출선 다변화를 적극 꾀해야 한다.

관세협상 타결은 기업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린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노동자들에게는 일자리와 생계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국민과 노동자, 관련 업체가 떠안게 될 손실과 불이익은 시간이 갈수록, 투자가 진행될수록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합의로 국민경제에 한미FTA 이상의 파급력이 예상되는 만큼, 사회적 대화가 절실하다. 기업과 노동계, 관련 기관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대미투자에 따른 피해 양상을 점검하고, 일자리 보호와 제조업 기반 강화 등을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충실한 점검과 온전한 대책이 없다면, 이번 합의는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며 계획대로 집행되지 못할 것이다. 정부도 협상 주체로서 사후대책에 대한 책임이 크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국회에서 정부와 산업계를 아울러 관련 사항을 점검하고 피해 대책을 수립하는 논의에 주도적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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