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을 만세]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구하고, 지구를 구한다

홍천 내촌면 물걸2리 ‘삼삼은구’

홍천 내촌면 물걸2리에서 ‘자원순환텃밭 모아’를 운영하는 삼삼은구 김인호 대표와 인혜경님을 만났다. 삼삼은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구한다, 또는 삶과 삶이 만나 지구를 구한다는 뜻으로 마을에 사는 세 사람이 어떻게 하면 마을 살이를 더 재미있게 할까 이야기 나누며 자연스럽게 시작된 모임이다.

어느 날 셋은 마을 어르신들이 항상 같은 장소, 길가에 앉아서 쉬시는 걸 보고 우렁 각시처럼 몰래 평상을 만들어서 갖다 놓았다. 며칠 있다 보니 어르신들이 평상을 귀하게 쓰시고 비 오는 날은 세워서 처마 밑에 소중히 간수도 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꼈다. 또 마을에서 염소를 키우며 살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살던 집에서 나가라고 해서 단열이 안 되는 컨테이너에서 살게 되었다. 보다 못해 셋이 또 해결해 보자 하고 면사무소에 가서 방법을 찾았다. 다행히 읍내에 노인 보금자리 주택으로 옮겨 드리게 되었는데 살림살이가 하나도 없어서 방범대, 마을의 단체들, 개인들에게 티브이, 침대, 세탁기 등을 후원을 받아서 살림을 차려드렸다. 당시 아흔이 넘으셨는데 몇 년 따뜻하게 지내시다가 작년에 돌아가셨다.

또 마을에 못난이 작물을 나누는 곳을 만들어서 마을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공간도 만드는 등 자잘 자잘한 일들을 하면서 지냈다.

삼삼은구 김인호 대표와 인혜경님 ⓒ필자 제공

김인호님과 인혜경님은 성미산 학교 교사였다. 물걸2리에 있는 폐교에서 성미산 학교 아이들이 일 년간 사는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2018년에 아이들과 함께 와서 농사도 짓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았다. 당시 석산 개발 문제가 터져서 아이들과 함께 집회도 나가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결국 막아냈다. 아이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큰 경험이 되었는데 귀농귀촌에 마침 뜻이 있던 차에 ‘여기서 살아볼 만하겠다’ 해서 오게 되었다.

이사 와서 보니 시골은 쓰레기차가 집집마다 가지 못하는 이유로 쓰레기 버리는 곳이 마을 군데군데 있었다. 문제는 쓰레기가 항상 쌓여 있고 주변으로 흩어지기도 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고민이 되었다. 농촌지역은 재활용도 잘 안되고 쓰레기를 무단 소각하는 일도 많다. 이 이장님과 함께 ‘강원도지역문제해결플랫폼’에 실험 제안서를 제출했다. 각 마을별로 해결하고 싶은 내용을 실험하는 비용으로 지원해 주는데 ‘두 달 동안 쓰레기가 마을 한군데로 모이면 마을이 깨끗해지고 분리배출이 잘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에 들어갔다. 그러나 첫 출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몇몇 분들이 마을의 얼굴인 회관에 쓰레기를 모으는 게 말이 되냐고 반대 의견을 낸 것이다. 실험이 끝나는 두 달이 지나면 뜯겠다고 설득했다. 두 달간 주민들을 대상으로 여덟 차례 환경 교육도 진행했다. 쓰레기 모으는 곳을 ‘모아’라고 이름 붙이고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하여 4명의 노인분들(모아짱, 모아지기)을 배치받았다. 마을 분들은 실험 기간 내내 쓰레기를 모아로 가지고 오셨고 드디어 마을 쓰레기를 한곳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모아 놓으면 모아짱과 모아지기님들이 일주일에 세 번 오셔서 다 쏟고 페트병 라벨도 떼고 세세한 재분류를 한다. 모아짱은 쓰레기 관리뿐 아니라 독거노인이 사는 곳에 방문해서 쓰레기를 수거하며 쓰레기종량제 봉투도 나눠드리고 분리배출하는 방법도 알려드린다. 노인들은 제때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집에 쌓아두게 되는데 묵은 쓰레기를 해결하니 자연스레 삶의 질도 올라가게 되었다. 방문하면서 잘 계신지 살피고 이야기도 나누니 자연스레 돌봄까지 되고 있다. 노인 일자리는 한 달에 열 번 나오는 일인데 모아지기들은 일자리가 끝나도 두 번 이상 더 나와서 일을 하신다. 다른 일자리 사업에 비해 궂은일이지만 마을에 직접적으로 도움 되는 일이라 더 보람이 느껴지신다고 한다.

모아지기들의 재분류 작업모습 ⓒ필자 제공

두 달 실험을 마치고 주민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대로 유지를 원하는 답이 95.2%가 나왔다. 그렇게 모아는 지속가능해졌다. 환경미화원 단 세 명이 내촌면 전체 쓰레기를 수거하는데 물걸2리는 한 곳에서 다 실어가니 쉬는 시간도 더 확보되었다고 한다. 농촌은 농약병을 일 년에 한 번씩 부녀회가 수거하는 소득사업을 했는데 수거율이 낮았다. 수거가 되지 않은 농약병은 밭에 방치되거나 남은 농약으로 음독자살 등 사회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이 사업도 모아가 일상적으로 농약병을 갖다 놓을 수 있게 하고 남은 농약도 수거통에 모으고 있다. 농약병은 예년에 160kg을 모았다면 모아가 맡게 되면서 7~800kg을 모으고 있다. 농약병, 공병, 캔, 고철, 투명 페트병은 환경공단에서 1kg당 약 1,600원을 받는데 이렇게 마을 쓰레기를 자원화하면서 수익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이 수익금으로 모아지기들과 한 달에 한 번 회식도 하고, 쓰레기 봉투나 장갑, 소모용품 구매, 공간 유지 보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모아짱이 더 일 한 날의 급여를 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전국에서 견학도 많이 오시고 작년에는 ‘농어업인 삶의 질 유공자’라는 장관상을 받게 되었다. 올해는 대한민국지속가능발전대회에 선정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실험 후에는 마을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고 운영하기로 했는데 마을은 이장님이 바뀌면서 아직도 삼삼은구가 감당해야 하는 게 (생업도 있는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때로는 ‘너희들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냐’ 와 같은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삼삼은구가 가장 원했던 것은 모아짱님의 노인 일자리 이외에 더 일한 날만큼의 급여(월 30만 원)를 마련하는 것인데 마을에서 지급하기로 의결을 해놓고 며칠 만에 임시 회의를 소집해서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리는 일도 있었다. 많이 도와주실 때도 있지만 이런 때는 정말이지 눈물이 날 만큼 힘든 마음이 든다. 다행히 대한노인회 홍천지부에서 모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모아짱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쓰레기는 치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쓰레기가 나오지 않게 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으로 마을의 폐교에 ‘공방 모아’를 만들고 제로 웨이스트를 주제로 일주일에 한 번 주민들 모임을 하고 있다. 올해는 평생학습 동아리로 신청하여 수세미를 길러서 판매하고, 소창으로 손수건도 만들어서 조금씩 팔아보려고 한다. 오는 11월 29일은 마을에서 작은 환경 축제를 앞두고 있다.

마을 폐교에서 진행하는 모아공방 ⓒ필자 제공

수리모아도 있다. 모아 일을 옆에서 잘 도와주시던 전경구님이 마을에서 재료비만 받고 수리 재능기부를 하기로 했다. 시골살이는 도움이 필요한 일이 많다. 마을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전등이 나갔는데 고칠 줄을 모르니 밖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달라고 부탁하려고 한 시간을 서 있었다고 하셨다. 급한 마음에 전화나 다른 방법은 생각이 안 나셨다고.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는데 어려울 때마다 계속 길이 만들어지면서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도 마을의 종합사회복지관이 되어 서로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고 환경 이야기도 계속하고 싶다. 도시에 살다가 홍천에 오니 석산 개발을 비롯한 지역의 난개발 문제가 일상적으로 너무 많은데 아직은 목소리가 너무 작고 공론화가 부족하다. 귀농인의 낯선 눈으로 이 지역에 채워갈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그 길에 함께 하는 동료들도 많이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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