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택배노동자인 동현(가명)씨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부터 새벽배송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밤 9시에 출근하면 다음 날 아침 7시가 넘어서야 일이 끝난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심야노동을 3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뒤바뀐 생활 패턴과 피로에 주간배송으로 옮겨가고 싶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기존 주간배송 노동자가 그만둬 빈자리가 생겨야 지원해 이동이 가능하다. 그나마도 지원자가 많으면 새벽배송 가장 경력이 오래된 택배기사가 먼저 주간배송으로 가는 게 업계 관례다. 주야간 교대는 영업점 내에서 임의대로 결정할 수 없다. 쿠팡 택배기사들은 배송 업무를 위해 개인별로 아이디를 부여받는데, 이때 주야간 배송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즉 주야간 변경도 쿠팡의 최종 허가가 있어야 가능한 셈이다.
밤 9시에 캠프로 출근한 동현씨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프레시백 정리다. 전날 회수한 프레시백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얼음물과 쓰레기를 분류해 버리고 정리하는 일이다. 프레시백은 쿠팡이 신선식품을 담아 배송하는 다회용 보냉 가방이다. 고객이 신선식품을 꺼낸 뒤 빈 가방을 문 앞에 두면 기사가 수거해 재사용하는 시스템이다.
프레시백 정리가 끝나면 반품 물품을 정리한다. 각 반품물품에 송장을 다시 부쳐 스캔 하고, 구역별로 정리해 반납하는 작업이다.
동현씨는 이렇게 반품 물품 정리까지 끝나고 나서야 분류작업을 시작한다. 쿠팡 물류센터(풀필먼트)에서 간선차를 통해 캠프에 도착한 택배물량은 컨베이어 벨트 위로 옮겨진다. 그러면 자동분류시스템인 ‘휠소터’가 배송물품을 영업점별로 분류해주는 데, 이게 끝이 아니다. 쿠팡CLS 에서 고용한 헬퍼(분류인력)가 산더미처럼 쌓인 택배물량을 ‘롤케이지’라고 불리는 대형수레로 영업점 차량이 모여 있는 곳에 옮겨 놓으면 다시 택배기사가 개인 구역에 따라 분류하는 ‘진짜 분류작업’을 진행한다. 구역별로 나눈 물건은 바코드를 찍어 택배차에 싣는 상차까지 완료해야 비로소 분류작업이 모두 완료된다.
윤종오 진보당 의원이 '택배 없는 날'인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CLS 캠프에서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윤종오 의원실
설명은 짧았지만 프레시백 정리부터 반품 물품 정리, 분류작업까지 걸리는 시간은 절대 짧지 않다. 나름 업무가 숙달됐다고 자부하는 동현씨도 이 모든 작업을 마치는데까지 1시간30분 이상이 소요된다. 그러다 보면 동현씨가 택배기사 본연의 업무인 배송을 시작하는 시간은 밤 10시 30분을 넘길 때가 많다.
택배물량을 싣고 캠프를 나선 동현씨가 배송구역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30분 남짓이다. 대부분의 캠프가 배송시간을 절감하기 위해 각 지역별 거점에 차려지는 만큼 다른 택배기사들의 이동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싣고 나온 택배물량을 모두 배송하기까지는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동현씨는 이런 업무를 하루에 3번 반복한다. 업계에서 말하는 이른바 ‘3회전 배송’이다. 물품을 인수하는 캠프와 배송 구역을 하루 세 번 왕복하며 분류작업과 배송을 반복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실태 조사에 따르면 쿠팡 야간 배송기사 767명 가운데 77%가 ‘야간 3회전 배송’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벽배송의 주요 상품인 신선식품은 맨 마지막 3차 배송에 집중된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배송을 진행할 경우 동현씨가 마지막 3차 배송을 시작하는 시간은 보통 새벽 4시쯤이다. 그리고 오전 7시까지 신선식품 배송을 완료하고 나서야 퇴근한다. 동현씨가 이렇게 하루 평균 처리하는 물량은 약 250개에서 300개 정도다.
동현씨의 업무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배송하면서 나오는 프레시백과 반납물품 회수도 택배노동자의 몫이다. 매일 출근해 제일 먼저 정리하는 프레시백과 반납 물품 처리 역시 이처럼 배송과정에서 회수한 것들이다.
휴식시간을 갖기도 어렵다. 정해진 시간 내에 배송을 완료하지 못하면 발생하는 불이익 때문이다. 회사가 요구하는 수행률에 미달했을 때 배송구역을 빼앗는 ‘클렌징 제도’는 없어졌지만, 사실상 클렌징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SLA(소비자 평가)제도가 생겼기 때문이다. SLA평가는 매년 갱신되는 캠프와 영업점간의 재계약시 활용된다. 이때 SLA평가 수행률 하위 20% 영업점은 재계약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는 동현씨가 ‘먹고사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영업점과 계약을 맺고 일하는 동현씨는 영업점이 캠프와 재계약을 하지 못할 경우 함께 일자리를 잃게 된다. (동현씨의 하루 일과는 쿠팡 택배기사들의 증언을 모아 재구성했다.)
물론 모든 쿠팡 택배노동자들이 새벽 배송을 꺼려하는 건 아니다. 일부는 개인적인 이유로 새벽배송을 선호하기도 한다. 특히 새벽배송은 수수료가 주간배송에 비해 30%가량 높은 만큼 일부 새벽배송을 선호하는 택배기사들도 있다. 결국 이들은 높은 수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생명과 건강을 갈아 넣는 선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송파구의 쿠팡 본사 모습. 자료사진. ⓒ뉴시스
노동자 생명·건강 갈아 넣은 쿠팡... CJ대한통운 제치고 택배 1등 기업 등극
최근 쿠팡 택배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요구가 ‘새벽배송 전면 금지’로 변질돼 여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22일 진행된 국회 주도의 ‘택배 사회적 대화’에서 택배노조는 세계보건기구(WHO)가 '2급 발암 요인'으로 분류한 초심야시간대(자정~새벽 5시)의 노동을 제한해 쿠팡 새벽배송 노동자들의 과로를 줄이고 수면시간을 보장하자고 제안했는데,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새벽배송을 폐지하려 한다’는 프레임을 씌워 여론 편 가르기에 나선 것이다.
특히 관련 논의의 핵심인 ‘노동환경 개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언론과 정치권은 ‘택배노조가 새벽배송을 전면 금지하려 한다’고 왜곡하며 반대 여론을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대가로 한 현재의 편리함은 지속할 수 없다. 그런데 ‘로켓배송’으로 상징되는 쿠팡의 성장 신화 뒤에는 노동자들의 과로와 희생이 자리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 10년간 ‘빠른 배송’을 앞세워 국내 유통시장의 판도를 바꾸었지만, 그 혁신의 속도만큼이나 현장 노동자들의 피로도는 누적돼 왔다. 쿠팡은 24시간 가동되는 전국 30여개 물류센터를 기반으로 ‘주문 후 하루 이내 배송’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쿠팡 물류센터 및 배송노동자 사망 사례는 20건 이상 보고됐다. 대부분은 과로사 혹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돌연사였다. 지난해 5월 숨진 쿠팡의 야간택배기사 고 정슬기씨도 과로를 반복하다 목숨을 잃었다. 근로복지공단도 고인의 사망에 대해 “주 6일 고정 야간근무,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배송마감 시간으로 인한 정신적 긴장 상태로 업무상 부담이 가중됐다”며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갈아 넣은 쿠팡은 결국 택배 1위 기업이 됐다. ‘쿠팡프레시’로 불리는 새벽배송 서비스는 쿠팡 성장의 핵심축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밤 9시부터 오전 7시까지 배송을 마쳐야 하는 강도 높은 일정으로 운영된다. 쿠팡 소속 택배노동자는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근무하며, 일부는 주 6일 이상 일한다. 택배노조가 초심야시간대 배송업무를 제한해야 한다고 한 것도 이 같은 과로 실태가 사회적 문제로 번졌기 때문이다.
택배노조 한선범 정책국장은 “야간노동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미 의학적으로도 증명이 된 이야기”라며 “다른 심야노동의 경우 교대제를 하기도 하지만, 쿠팡은 그렇게 하기 힘든 구조다. 심야배송의 위험을 없애기 위해서는 주간 연속 근무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새벽배송의 경우 오전 5시부터 긴급한 품목을 중심으로 배송하는 방식으로 하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국장은 “저희의 제안은 새벽배송을 완전히 폐지하자는 게 아님에도, 의도적으로 (왜곡해) 보도가 이뤄지면서 논란이 된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번 사회적대화는 소비자의 편익과 택배노동자의 건강권이 균형을 이루는 합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갈림길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