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한·미 관세 협상에 따른 특별법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기업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정확한 정보와 검증이다. 국익을 위해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그 전제는 투명성과 책임성이 확보되어 있을 때만 유효하다.
이번 협상은 단순한 관세 협상이 아니다. 정부는 최대 3,500억 달러(506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해 미국 산업에 투자하기로 약속했고, 그에 따라 미국이 자동차 등 관세를 인하한다고 밝혔다. 투자 규모만으로도 국가 재정과 국민 경제에 미칠 파장은 막대하다. 헌법 60조는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 부담을 지우는 경우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MOU라서 비준이 필요 없다”는 이유만으로 국회 검증을 피해가려 한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내세우는 ‘속도’ 논리가 현실과 다르다는 점이다. 이미 양국은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달의 1일부터 미국의 관세 인하가 소급 적용된다고 합의했다. 다시 말해 제출만 되어도 혜택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관건은 통과 속도가 아니라 제출 전 어떤 내용을 담아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느냐이다. 정부는 ‘법을 빨리 통과시키지 않으면 기업이 손해 본다’고 하지만 협상 구조는 이렇게 되어 있다. 정부가 법안을 제출하면 관세 혜택이 발생하도록 되어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그때부터 투자재원이 확정되는 것이고 국민 부담이 지워지는 구조다.
결국 서둘러야 하는 것은 ‘통과’가 아니라, 재정 부담을 최소화할 내용을 만드는 과정이다. 지금처럼 팩트시트도, 투자 조건도, 수익 구조도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을 통과시키는 것은 미국 요구를 그대로 승인해주는 셈이다. 검증 없는 속도는 ‘민첩한 협상’이 아니라 재정 주권의 포기가 된다.
국민의 자산을 미국에 투자하는 특별법은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한다. 누가 투자 결정을 내리는가? 한국 정부인가, 민간인가, 아니면 미국 정부인가, 트럼프인가. 원금 회수는 보장되는가? 수익 배분 구조는 대등한가? 이 질문에 어떤 답도 제시하지 않은 채, ‘급하니 빨리 통과하자’는 것은 도저히 책임 있는 정부의 태도라 보기 어렵다.
현재 조건에서 진정한 국익은 입법의 속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돈이 어디에 쓰이고, 어떤 위험이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에서 나온다. 정부는 정치적 성과를 위한 속도전을 멈추고, 합의문과 재정 부담 구조를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 국민 앞에 설명하지 못할 정책은 서둘러 통과시켜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