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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남 이야기] 맘다니의 성공, 한국에서도 통할까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인이 11월 4일 밤(현지시간) 시장 선거 당선파티에서 연설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며 손을 흔들고 있다. ⓒ뉴시스

조란 맘다니의 뉴욕시장 승리는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에 참여했던 청년들이 14년이 지나 실제로 '월가를 점령'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맘다니 성공의 배후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근본적 한계를 절감한 청년 세대가 있다. 이들은 과거 버니 샌더스 열풍을 일으켰고, 9만 명의 '맘다니'가 되어 뉴욕의 문을 두드렸다.

맘다니와 미국 청년들이 그렇듯, 맘다니(33세)와 한살 차이인 필자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통해 정치 참여를 결심했다. 우리 청년 세대는 2016-17년 촛불혁명으로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2024~25년 '빛의 혁명'으로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을 막아내 민주주의를 지켜낸 세대다. 한국의 진보정치 또한 '빛의 혁명'의 주역이었던 청년 세대가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점을 맘다니의 승리는 보여줬다.

맘다니의 성공은 청년 삶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파고들고, 디지털 시대에 맞는 적극적인 SNS 활용을 통해 가능했다. 맘다니는 뉴욕 청년들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생활 의제에 가장 선명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부담 가능한 뉴욕(Affordable New York)'을 내걸고 임대료 동결, 공공주택 20만 호 건설, 버스 무상교통, 무상 보육, 그리고 부유세/법인세 인상을 약속했다. 이는 민주당이 고수해 온 자유시장 정책과 거리가 멀었고 청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에서도 꽤나 익숙한 정책과 돌풍이다. 2000년대 초반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이 시작한 '복지국가 담론'과 '진성당원제'에 기반한 헌신적인 당원들의 활동이 맘다니에게서 비쳐 보인다. 그렇기에 맘다니의 성공 모델을 한국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맘다니의 성공은 그가 활동하는 '미국'이라는 특수한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한국에서 '부담 가능한 서울' 등의 구호를 내거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여전히 압도적인 국부를 가진 '제국'이다. 미국인들은 맘다니가 내건 급진적인 재분배 정책이 국가 경제를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믿음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제국이 아니며, 경제적 체력도 다르다. 민주노동당이 인기를 얻었던 2000년대 초반은 한국 경제가 IMF를 극복하고, 고속 성장을 이루고 있었던 때다. IMF로 인한 실업의 증가와 사회 불안정성은 '보편 복지'에 대한 대중적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다. '추상적인 반자본주의'나 단순한 재분배 담론은 고성장기에는 매력적이었을지 모르나, 성장이 멈춘 지금은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될 뿐이다. 한국의 진보 정당이 조직력이나 활동성 면에서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보다 결코 뒤지지 않음에도 비슷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경제적 토대의 차이와 그로 인한 대중적 인식의 차이 때문도 있지 않을까.

맘다니의 공약은 '재분배'에 초점을 맞출 뿐, '생산'의 문제를 아직 다루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성장의 늪과 높은 실업률에 빠진 한국 경제에 맘다니 모델을 적용하기는 무리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진보진영은 어디에서 또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곳은 라틴 아메리카라고 생각된다.

3월 9일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멕시코 상품 관세 한 달 연기 결정을 환영하는 집회에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2025.3.29 ⓒ사진=뉴시스


한국과 라틴 아메리카는 '수출 주도 공업화'라는 유사한 발전 경로를 밟았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은 중화학공업의 수입 대체를 이루고 이를 수출 산업으로 키우는 과정을 밟았으나, 1980년대 '잃어버린 10년'과 외채 위기를 겪으며 붕괴했다. 이들은 한때 수출 주도 성장으로 잘 나갔지만, 그 주도권이 동아시아 등으로 넘어가자 무너졌던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은 주력 수출 품목들이 꺾여나가는 등 주력 수출 산업이 서서히 쇠퇴하고, 미중 패권 경쟁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다. SK 최태원 회장이 나서서 '유럽연합(EU)과 같은 한일 경제공동체' 를 제안할 정도의 위기감은 30년 전 라틴 아메리카의 모습과 닮아 있다. 대한민국 경제도 수출에만 의존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언제든 라틴 아메리카가 겪었던 위기와 고통을 맞이할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또 하나의 모델은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이다. 셰인바움은 멕시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기후 과학자 출신으로,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등 진보적 행보를 보여왔다. 그가 집권 1년이 지나도록 80%에 육박하는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과 멕시코는 모두 청년 고용 문제가 심각한 양상을 보인다. 한국의 경우 25년 3월 청년 실업률은 7.5%까지 치솟았고, 국가데이터처의 11월 5일 발표에 따르면, 취업이나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도 76만 명에 육박한다. 멕시코의 경우에는 공식 실업률(25년 9월, 3.0%)은 낮으나, 25년 2분기 기준 비공식 시장 노동자 비율은 54.8%에 달한다. 생계를 위해 저임금, 저숙련 비공식 일자리로 밀려나 저질의 일자리를 갖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셰인바움의 '플랜 멕시코'가 이런 청년 세대의 고용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있어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간다고 추정할 수 있다.

셰인바움은 '플랜 멕시코(Plan Mexico)'를 통해 니어쇼어링(nearshoring) 붐을 활용한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을 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재분배가 아니라, 국가가 전략 산업(자동차, 반도체, 항공우주)의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내수 생산 비중을 늘려(2030년까지 전문 제조업 150만 개 일자리 창출 목표), 무너진 제조업 기반을 다시 세우는 '국가 재건 운동' 프로젝트다.

한국도 플랜 멕시코와 같이 소부장(소재ᄋ부품ᄋ장비) 산업의 국산화와 제조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 내수 중심 경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고용 중심 제조업 국산화' 작업을 추진한다면, 지방 소멸을 막고 청년 실업 문제를 함께 풀어내는 청사진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세계 금융의 심장 월스트리트가 있는 뉴욕에서 민주사회주의자 맘다니의 성공은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다. 이는 트럼프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제동을 거는 중요한 정치적 성과다. 빛의 혁명 시기 광장의 주역으로서 윤석열의 12.3 내란을 무너뜨린 한국의 청년 세대 또한 맘다니의 성공을 충분히 재현해낼 역량이 축적되어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 주도 성장의 정점에서 붕괴하기 직전으로 보인다. 지금 한국 진보에게 필요한 상상력은 맘다니의 '재분배'를 넘어 셰인바움의 '국가 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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