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타결된 한미 관세협상을 두고 ‘한국의 경제주권을 제약하는 불평등 거래’라는 비판과 함께 대미투자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미투자에 따른 수익 배분 문제와 사업성 문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진보당과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준)이 주최하고 진보정책연구원이 주관한 ‘한미관세안보협상 및 대미투자결과 평가 긴급토론회’가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신석진 진보정책연구원장은 “이번 협상은 한국 경제의 자율성과 재정주권을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위험한 거래”라며 “정부는 협상 전 과정과 재정 부담 구조를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그는 문제의 본질을 ‘트럼프의 강도짓’이라고 일축하며 정부의 책임을 강조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관세 15% 인하로 얻는 기대이익 17조원을 위해 500조원을 강탈당하는 것”이라며 “10년간 3,500억 달러(약 506조 원) 투자는 미국이 주도하는 불평등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25%였던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기 위해 대미투자 계획을 미국과 합의했다. 하지만 앞서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선임경제학자인 딘 베이커는 관세가 25%로 오르면 한국의 대미 수출이 125억달러(약 17조원) 감소할 수 있지만, 이를 보전하는 데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3,500억달러의 20분의 1만 써도 충분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나 교수 역시 이와 같은 주장을 편 것이다.
또 나 교수는 대미투자와 관련해 한국이 수익성 낮은 사업들을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짚었다. 나 교수는 “미국은 결코 자본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라며 “만약 사업성이 양호해 높은 수익성이 기대되고, 원금 회수가 확실한 자국 내 투자 사업이 있다면 미국 자본이 왜 남한테 양보하겠느냐”고 꼬집었다.
한미관세안보협상 및 대미투자결과 평가 긴급토론회에서 발언 중인 나원준 경북대 교수 ⓒ진보당정책연구원 제공
나 교수는 “투자 결정권은 미국 상무장관이 위원장인 투자위원회가 쥐고 있다”며 “그렇다면 한국정부에게 떠넘겨질 강요된 대미투자는 그나마도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업일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한국의 대미투자로 발생할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나 교수는 “협상 초기 원금 회수 후에는 미국이 90%, 한국이 10%를 가져가는 구조가 논의되기도 했었다”면서 “설령 원금 회수와 상관없이 끝까지 5대5로 수익을 나누더라도 그 경제적 실질은 한국 정부의 대미 투자 2,000억달러 가운데 1,000억달러를 미국이 무상으로 몰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나 교수는 “그런데도 한국 협상단은 이와 같은 엉터리 수익 분배 구조를 상업적 합리성에 따른 결과로 둔갑시켰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나 교수는 “외환보유고 4,150억 달러 중 달러 자산은 3,000억 달러에 불과한데, 연간 150억 달러를 운용수익으로 조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매년 150억 달러 가까이 새로 빚을 내야 하는 상황으로 제2의 외환위기로 전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한국 측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외환시장 상황이 급격히 악화할 경우 투자 금액 조정 등을 요청할 수 있는 위험 방지 조항을 양해각서에 명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나 교수는 “연간 200억달러(한화 약 3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외화자금 유출이 장기간 반복적으로 예정된 마당에 양해각서 정도로 위험을 충분히 방지할 수 없다”면서 “만약 한국 외환시장에서 위험이 고조된다면 미국 내 투자가 중단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나 교수는 “미국은 한국의 외환시장 위험이 고조되더라도 자국 내에 이미 개시된 실물 투자가 조기 청산되는 일이 없도록 할 수 있다. 투자위원회는 그와 같은 결정에 맞서 한국이 투자를 중단시킬 수 있는 안전장치를 미국이 허용할 리 없다”면서 “한국정부로서는 고조되는 외환시장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 내 투자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 경우 미국은 유사시 별도의 유동성 지원을 통해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지배를 더욱 강화하려 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성혁 민주노동연구원 원장은 대미투자가 생산 원가가 싼 해외에 공장을 세워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국내의 생산 능력이 떨어져 산업이 쇠퇴해 가는 ‘국내 산업공동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원장은 “트럼프 1기 이후 8년간 대미투자가 7배 증가했고, 10대 그룹의 미국 생산법인 자산이 1,500억 달러에 달한다”며 “자동차, 조선, 철강 등에서 자본·기술·인력 유출과 국내 일자리 감소가 심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김창현 한반도평화와번영을위한협력 이사장은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을 ‘동맹의 현대화’라는 점을 지적하며 우려를 드러냈다. 김 이사장은 “핵추진 잠수함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무기체계로, 한국은 대중 봉쇄전략의 전초기지가 될 위험이 있다”며 “‘동맹의 현대화’ 미명 아래 경제·안보가 모두 미국 패권구조에 묶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주제준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준) 정책기획팀장이 타결된 한미 합의와 관련해 국회 비준을 촉구했다. 주 팀장은 “헌법 60조는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에 국회 동의권을 명시하고 있다”며 “정부가 ‘MOU는 비준 불필요’라고 주장하는 것은 헌법 취지 훼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도 한미관세안보협상을 ‘불평등 구조로 경제주권을 약화시키는 협정’이라고 비판하며 정부에 ▲협상 내용 투명 공개 ▲국회 비준 이행 ▲산업 피해 대책 마련 ▲재원조달 현실성 검증 등을 촉구했다.
한미관세안보협상 및 대미투자결과 평가 긴급토론회에서 발언 중인 김성혁 민주노동연구원 원장 ⓒ진보당정책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