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국보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앞에 초고층 빌딩을 건립하는 계획을 밀어붙이자 정부가 제지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이던 지난 10월 30일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 고시를 통해 건축물 최고 높이를 70m에서 145m로 일방적으로 변경했다. 계획대로면, 오는 2030년까지 종묘 앞에 40층 안팎의 초고층 빌딩숲이 형성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법원이 11월 6일 문체부가 낸 문화유산 인근 건설공사를 규제하는 조항을 삭제한 조례 개정안 소송에서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종묘의 앞과 옆이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이는 것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종묘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국가 사당으로, 14세기 말 건립 이래 600여 년간 제례 의식이 이어져 오고 있다. 수백 년에 걸친 단일 왕조의 사당이 건립되고 제례가 유지되는 일은 세계적으로 종묘가 유일하다. 또한 종묘 정전은 전체 길이 109미터의 단일 목조건물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창경궁과 청계천 등 역사문화적 공간과 연결된 점도 중요한 특질이다. 1995년 종묘가 한국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핵심 요건이기도 하다.
서울시의 계획에 관련 부처인 문화체육부와 문화유산청은 강하게 반발했다. 7일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허민 국가유산청장과 함께 종묘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묘는 조선 왕실의 위패가 모셔진 신성한 유산이며,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유산 1호의 상징적 가치를 가진 곳”이라며 “이러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는 현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라고 밝혔다.
문체부에 따르면, 1994년 10월 유네스코 측은 세계유산 지역 내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고층 건물 건축 허가는 없을 것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도 6일 국회 예결특위 답변에서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를 깊이 우려하며 “100m, 180m, 혹은 그늘이 있냐 없냐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주느냐 하는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서울 구도심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은 인정할 수 있고, 인근 주민들의 개발 요구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고층빌딩 건립으로 개발을 이뤄야 한다는 것은 아집이자 고루한 인식이다. 오 시장의 주장처럼 “종묘의 가치를 보존하고 더욱 높이면서,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길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미 경복궁과 광화문광장, 인사동과 종묘로 이어지는 지역은 한국 문화를 즐기려는 세계인들이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여기에 ‘케데헌 열풍’ 등을 타고 한국문화를 접하려는 외국인들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따라서 K컬처를 강조하는 미래지향적이고 보다 친환경적인 개발이 언제든지 가능하다. 이를 위해 관련 전문가와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야 하며, 국민 여론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자신의 임기가 얼마 안 남고 선거가 다가온다고, 한국의 전통을 계승한 미래세대의 중요한 문화자원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오 시장은 광화문광장에는 초대형 국기봉이나 한국전쟁 관련 조형물을 세우겠다고 고집해 이미 국민의 반감을 사고 있다. 지금 종묘 앞에 무언가를 만든다면, 어디에나 있는 초고층 빌딩숲이 아니라 한국의 멋을 드러내는 세계 유일의 명소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