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유튜브로 중계된 MBC 100분토론 ‘속도를 늦춰라..새벽배송, 이대로?’ 편의 연장전.
“저희가 이렇게 (토론)하는 사이에 실제로 이익을 가져가는 곳은, 돈 버는 택배사들은 따로 있네요?”
지난 11일 새벽배송 제한 논란을 다룬 100분 토론 내내 ‘새벽배송이 금지되면 (중소상공인은) 다 죽으라는 얘기’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백운섭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 회장이 긴 시간 토론을 마무리하며 무언가 깨달은 듯 꺼낸 얘기다. 아쉽게도 제한된 TV 생중계 토론을 마친 뒤 유튜브 채널에서 이어진 연장전에서 나온 발언이라 많은 시청자가 보지 못했을 장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 100분 토론에서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던 민주노총 강민욱 택배노조 부위원장(택배노조 쿠팡본부 준비위원장), 하충효 한국노총 택배산업본부 대외협력본부장,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모두 유일하게 의견이 모아진 대목이어서 잠시 소개하려 한다.
백 회장의 발언 이후, 하충효 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택배가 처음 시작한 게 30년이 지났다. 30년 동안 저희가 받는 택배 단가(수수료)는 1원도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낮아졌다. 물가는 매년 상승했는데, 저희들은 30년 전 배송 단가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건 주간이든 야간이든 새벽이든 상관없이 더 많은 물량을 배송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택배기사가 과로와 산업재해에 시달리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다.” 김현주 교수 역시 “저도 동의한다”라며 “저수가 단가 경쟁 등을 통해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노동을 시키는, 그것으로 인해 건강 위험이 증폭되는 이런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적극 공감했다. 강민욱 부위원장은 “사실 오늘 같은 자리에 쿠팡이나 다른 야간 업체, 혹은 365일 배송하는 업체들이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핵심을 파고들었다. 1시간 40분 가까이 이어진 토론 끝에 나온 결론은 이렇게 한 곳으로 향했다.
이러한 현실은 지난달 발표된 쿠팡 택배노동자 실태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조사 결과를 보면, 쿠팡의 택배노동자는 전년보다 배송 물품은 8.1% 증가했다는데 배송 수수료가 줄어들어 실질 소득은 1.8%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 택배노동자는 조사에 참여하면서 “매년 수수료는 삭감하는데, 삭감 이유는 앞으로 물량이 늘어날 것이 예측되어서라고 한다. 일은 더욱 힘들어지는데, 수입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게 가장 힘들다”는 의견을 남겼다. 또 다른 노동자는 “물량은 더 많아지는데, 내년에도 수수료가 줄어들 것 같으니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나 걱정이 든다. 사람이 버틸 수 있게 하는 프로세스인지 한계를 실험하는 ‘실험 쥐’가 되는 것 같다”고 괴로워했다. 쿠팡은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더 많은 일을 하면서도 수입은 더 줄어들었다.
서울 시내의 쿠팡 캠프에서 배송 기사들이 배송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뉴스1
새벽배송을 둘러싼 논쟁이 시작된 지도 벌써 2주가 흘렀다. 택배노동자와 소비자, 택배노동자와 택배노동자, 택배노동자와 물류노동자를 갈라치기 하는 주장이 일방적으로 쏟아졌고, SNS에서는 중국의 알리바바가 우리나라의 유통시장을 장악할 것이라거나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쿠팡을 장악하기 위한 의도라는 등 정체불명의 음모론까지 횡행했다. 과로를 멈춰달라는 절박함을 담은 제안을 던진 택배노조는 자신의 제안을 제대로 설명할 겨를도 없이 난타를 당하고 있지만, 쿠팡과 같은 택배업체는 마치 이 시간만 지나면 된다는 것인 양 침묵하고 있다.
3편에 걸친 ‘새벽배송 찬반 논쟁이 빠트린 진실’ 기획은 이런 의문에서 출발했다. 대체 새벽배송은 어떻게 이뤄지길래 택배노동자들이 쓰러지고, 이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업체들은 왜 이 논의에서 침묵하는 것인지, 우리가 진짜 논의해야 할 사안은 무엇인지, 택배노조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기획에 앞서 택배노조의 제안이 무엇인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아 보기도 하고, 장시간 연속적인 야간 고정 노동이 신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상식과도 같은 이야기를 전달해 봤지만, 결국 남는 건 단 하나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로사를 막기 위한 택배업체의 대안은 무엇이냐고.
쿠팡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택배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보도할 때마다 쿠팡 홍보팀의 전화를 한 통이라도 받지 않은 기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대개 ‘그분은 쿠팡의 노동자가 아니라 대리점 업체 소속’이라는 반론이 가장 많았다. 쿠팡의 새벽배송을 하다 쓰러진 채 발견됐는데도 쿠팡에 책임이 번질까 선 긋기에 급급했던 게, 그동안의 쿠팡이었다. 잇따른 노동자의 사망에 국회 국정감사에 매년 불려 나오고도 “쿠팡 새벽노동에 종사하는 배송직의 근로 여건이 그렇게 열악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강변했던 게, 그동안의 쿠팡이었다. 쿠팡CLS 관계자의 독촉에 ‘개처럼 달리고 있다’는 말을 남기며 숨졌던 고 정슬기 씨의 사망이 산업재해로 인정되고 나서야 뒤늦게 고개를 숙였고,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숱하게 지적됐던 클렌징 제도와 다회전 배송, 분류작업 개선 등의 대책을 등 떠밀리듯 내놓았던 게, 그동안의 쿠팡이었다.
정작 현장에서는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증언이 빗발치고 있지만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게, 지금의 쿠팡이다. 사회적 대화 과정에서도 과로사 대책은 제시하지 않은 채 ‘개별 기업에 대한 특별한 노동 구조에 대해 논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안으로는 영업할 수 없다’는 의견만 내놓고 있는 게, 지금의 쿠팡이다.
쿠팡과 택배업체는 사라진 이 논쟁이 어떤 마침표를 찍게 될지 예단하긴 힘들다. 한동안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막자는 택배노조의 제안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여론몰이가 계속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러했듯, 100분 토론의 백 회장이 그러했듯, 결국 우리가 마주하게 될 결론은 택배업체의 책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야기하는 지금의 시스템을 만든 이유는 택배사들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은 모두가 공감할 테니까. 결국 이 시스템을 만든 그들이 답하지 않으면,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다음 사회적대화 논의는 이달 말에 이뤄진다. 그때까진 쿠팡이, 다른 택배업체들이 새벽배송으로 인한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막을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가져오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