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혁명(1983~1987)을 이끈 혁명가 상카라 ⓒnasseryouthmovement.net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혁명(1983~1987)을 이끈 혁명가 상카라. 대다수 한국인은 부르키나파소라는 나라와 상카라(1949~1987)라는 인물에 대해 들은 바가 거의 없다. 그런데 2007년 발행 이후 수십만 권이 팔린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읽은 독자라면, 상카라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저자 장 지글러가 책의 뒷부분에서 아프리카 혁명가를 상세하게 언급한 대목을 떠올릴 수 있다.
장 지글러의 책을 읽고 연락한 혁명가 상카라
장 지글러는 부르키나파소의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던 군인 출신 정치인이자 혁명가인 상카라를 네 번에 걸쳐서 만났다. 1983년 쿠데타에 성공한 후 상카라는 전화를 먼저 걸어 장 지글러의 책(Main basse sur l'Afrique: 아프리카에 대한 수탈)을 감옥에서 읽었다며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오시겠습니까?" 하고 말했다고 한다. 장 지글러는 1984년 1월 부르키나파소의 수도 와가두구를 방문했다. 상카라가 암살 당하기 석 달 전에는 에티오피아 출장길에 우연히 만나 호텔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체 게바라(1928~1967)가 죽을 때 몇 살이었는지 물었고, "나도 그 나이까지 살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치도 자기 죽음을 예감한 듯한 발언이었다. 장 지글러는 "외국세력의 조종을 받은 자국 군부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점에서 상카라는 살바도르 아옌더 칠레 대통령의 죽음과 비슷하다고 하면서 책에 이렇게 적었다.
상카라의 죽음과 함께 사람들의 커다란 희망도 깨졌지. 꽁파오레 치하의 부르키나파소는 다시 보통의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말았어. 만연한 부패, 외국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 북부 지방의 만성적인 기아, 신식민주의적 수탈과 멸시, 방만한 국가 재정, 기생적인 관료들, 그리고 절망하는 농민들……
실천하는 사회학자로 유명한 장 지글러는 유엔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도 활동했는데, 제3세계에서 일어나는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이라 보았다. 외부의 농업지원, 사막화 대책, 우물파기 프로젝트는 응급조치에 불과하며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중심의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고, 상카라의 생각도 이와 거의 같았다.
1986년 11월 8일, 니카라과에서 열린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창립 25주년과 창시자 카를로스 폰세카의 전사 10주기 기념식에서 상카라가 국제 대표단을 대표해 20만 명의 군중 앞에서 연설했다. 그는 "우리는 그레나다 침공을 규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니카라과에 대한 침략에 항의합니다"라고 말했다.
1986년 11월 8일, 니카라과에서 열린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창립 25주년과 창시자 카를로스 폰세카의 전사 10주기 기념식에서 상카라가 국제 대표단을 대표해 20만 명의 군중 앞에서 연설했다. 그는 "우리는 그레나다 침공을 규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니카라과에 대한 침략에 항의합니다."라고 말했다. ⓒ도서출판 진지
'사악한 삼총사' 거부한 상카라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로 불리는 상카라의 노선과 사상을 이해하기 전에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소의 인구는 현재 2250만 명이고, 면적은 한반도의 1.2배 크기이다. 동서남북으로 니제르, 라이베리아, 가나, 말리와 접하고 있다. 1인당 GDP는 739달러로 세계 146위의 최빈국에 속한다. 부르키나파소의 이전 이름은 오트볼타였다. 1919년 3월 1일 프랑스령 오트볼타가 만들어졌다. 1960년 8월 5일 오트볼타 공화국으로 독립했고, 1984년 8월 4일 부르키나파소로 국호를 변경했다. 오트볼타 공화국 기간에 여러 차례의 군사쿠데타와 독재, 식민지 유산, 외세의존형 경제, 기득권층의 부패로 오트볼타는 후진적인 정치, 경제체제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현재 부르키나파소 대통령인 이브라힘 트라오레(37)도 2022년에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트라오레에 대해 서방 언론은 주로 인권탄압 하는 독재자, 국유화 추진하는 사회주의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2023년 초에 부르키나파소에 주둔 중이던 프랑스군을 철군시켰고, 2025년 9월에는 동성애를 불법화했다. 올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차 대전 승전 기념 열병식에 27개국 대표가 참석했는데, 트라오레는 군복을 입고 참석해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1987년 살해된 상카라의 제자임을 자임하는 현 대통령 트라오레는 미국 일극 체제에 반대하고, 다극화 흐름에 동조하는 외교노선에 동조하고 있다.
토마 상카라는 1983년 8월 군사쿠데타로 집권하면서(8월 혁명으로 불린다) 나라 이름을 오트볼타에서 부르키나파소라고 바꿨는데, 이는 올곧은, 정직한, 자립, 주체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상카라처럼 반제국주의 노선을 천명한 트라오레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대출을 거부하고 "아프리카는 서구의 도움이 필요 없다"라고 선언하면서 ‘스스로 서는 아프리카’를 주창했다. 장하준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2007)에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세계무역기구(WTO)를 ‘사악한 삼총사’로 불렀다.
2025년 11월 발간된 ‘상카라-검은 대륙 혁명의 목소리’. 부르키나파소 혁명(1983~1987)을 이끌다 서방의 지원을 받은 군부에 의해 암살된 상카라는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로 불린다. ⓒ도서출판 진지
상카라의 정치적 ‘제자’ 트라오레가 35년만에 집권
상카라는 1983년 8월 혁명으로 집권한 뒤 반서방, 자립주의 노선의 길을 걸었다. 집권 4년 동안 자립경제, 여성해방, 문맹퇴치, 환경보호 등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친서방 노선을 따르는 주변 국가의 지원을 받는 군부세력에 의해 암살당한다. 군사쿠데타를 주도한 인물은 다름 아닌 상카라와 함께 8월 혁명을 주도한 콩파오레(상카라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을 맡음)였다. 혁명동지인 상카라를 살해한 콩파오레는 즉시 국유화를 철회하고,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다시 가입했으며, 상카라의 개혁정책을 거꾸로 되돌렸다.
콩파오레의 독재 정권은 2014년 대중 시위로 전복될 때까지 27년 동안 권력을 유지했다. 콩파오레가 집권하는 동안 금지했던 상카라의 유해발굴 작업은 2015년 5월 25일 아프리카 해방기념일에 시작되었는데, 유해에서 10여 발의 총알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상카라의 미망인은 프랑스가 그의 암살을 주도했다고 비난했고, 2017년 부르키나파소 정부는 프랑스 정부에 상카라 살해에 관한 군사 문서를 공개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현재 부르나키파소에는 상카라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정부는 공식적으로 그를 ‘국가의 영웅’으로 선포했다. 그런데 상카라는 집권 기간(1983~1987)에 다른 아프리카 지도자들처럼 자신의 초상화가 공공장소에 걸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묻자 "토마스 상카라가 700만 명입니다"라고 답했다. 당시 부르나키파소의 인구는 700만 명이었다. 기타 연주에도 뛰어난 솜씨를 지녔던 상카라는 부르나키파소의 국가를 직접 작곡하기도 했다.
"혁명과 여성해방은 함께 가야"
최근에 출간된 「상카라–검은 대륙 혁명의 목소리」(진지)는 바로 이런 토마 상카라의 연설문과 인터뷰 기사를 엮은 책이다. 책의 ‘머리말’은 2005년 2월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우리는 세계 혁명의 계승자들」 스페인어판 출간기념회에서 메리-앨리스 워터스가 한 연설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이 머리말을 통해 상카라의 이념과 노선을 파악할 수 있다. 그는 1984년 유엔 연설에서 부르키나파소의 투쟁은 18세기의 프랑스 혁명과 1917년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계승한다고 밝혔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상카라는 국제주의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는데, 앙골라, 나미비아, 팔레스타인, 니카라과 민중의 반제투쟁을 지지했고, 할렘의 민중, 그리고 전 세계의 노동자와 하나였다. 머리말에는 여성해방을 강조한 상카라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혁명과 여성해방은 함께 가야 합니다. 우리가 여성해방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선 행위나 인간적 동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혁명의 승리를 위한 기본적인 필요조건입니다. 여성은 하늘의 나머지 절반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1987년 3월 8일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 수 와가두구에서 열린 세계여성의 날 행사에 참석한 수천 명의 여성 앞에서 연설하는 상카라. ⓒ도서출판 진지
본문에는 상카라가 1987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행사에서 한 ‘여성해방 없이 혁명의 승리는 불가능합니다’라는 제목의 연설문이 43쪽에 걸쳐 실렸다. 전국에서 모인 수천 명의 여성을 상대로 한 긴 연설에서 상카로는 "3년 반 동안 우리의 혁명은 매춘과 같은 여성 비하 관행과 부랑자, 여성 청소년 범죄, 강제 결혼, 여성 할례, 여성들이 직면한 특히 어려운 생활조건과 같은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지속해서 노력해" 왔음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부르키나파소 여성들이 "남성우월주의와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을" 무너뜨렸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무덤에 갖고 갈 책은 「국가와 혁명」, 「코란」, 「성서」
이밖에도 「상카라–검은 대륙 혁명의 목소리」에는 상카라가 행한 30개의 연설과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제목만 보아도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사회적 불의와 제국주의적 지배를 척결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 "우리의 백악관은 검은 할렘에 있습니다", "제국주의는 우리의 숲과 사바나의 방화범입니다", "우리는 니카라과의 투쟁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이곳과 프랑스에서 우리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들에 맞서" 등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상카라는 부르키나파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진 반제투쟁을 지지하고 맞서 싸웠다.
「상카라」의 차례 중에 ‘책과 독서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있다. 파리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쥔 아프리끄」(1986년 2월)와의 인터뷰를 실은 글이다. 이 인터뷰는 상카라가 읽은 책을 주로 다뤘는데, 인터뷰 직전에 재미있게 읽은 것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좌파」라고 말했다. 이 책은 프랑스 국회의원 선거에 관한 내용인데 우파 저널리스트가 저자라고 했다. 그는 무인도에 갇히면 갖게 될 책이 무어냐는 질문에 자신이 피난처로 삼고 자주 읽는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꼽았다. 이와 함께 성경과 코란도 가져갈 거라고 했다. 그는 레닌, 무하마드, 예수는 혁명가이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들의 말은 "아시아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상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카라는 드골의 저서도 거의 다 읽었고, 미테랑의 「벌과 건축가」를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공식 연설 외에도 글도 직접 쓰시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네. 오랫동안 써왔습니다. 1966년부터요. 아직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죠. 매일 밤마다요. 1982년에 잠시 중단했죠. 하지만 그 이후로 다시 시작했어요. 저는 제 생각들을 적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앞으로 글을 쓴다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조직과 건설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카라는 인터뷰 다음 해에 암살 당하면서 책을 쓰지는 못했다.
"체 게바라에 더 가까이 다가가 봅시다"
상카라는 쿠바의 카스트로와 만나기도 했다. 1984년 9월 25일부터 4박 5일 동안 쿠바를 방문한 상카라는 호세 마르티 훈장을 받았다. 그는 1986년에도 쿠바를 방문해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고, 이어서 니카라과에서 열린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창설 25주년 기념식에서 180명의 외국대표단을 대표하여 발언했다.
1984년 9월 25일, 쿠바 아바나를 방문한 상카라를 환영하는 피델 카스트로 대통령. ⓒ도서출판 진지
이 책에 실린 마지막 연설문은 '사상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체게바라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상카라의 이 연설은 1987년 10월 8일 체 게바라 사망 20주년 기념 전시회 개막식에서 행한 것이다. 암살 당하기 일주일 전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쿠바 대표단에는 체 게바라의 아들 카밀리오 게바라 마르치도 참석했다. 상카라는 이 연설에서 체 게바라는 "혁명적인 확신", "인간미의 상징", "인간 중의 인간", "혁명가 중의 혁명가"라고 하면서 그의 이미지보다는 정신을 더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봅시다. 그를 신처럼, 인간 위에 놓인 어떤 이미지처럼 대하지 말고, 오히려 말을 걸어주고 말을 걸 수 있는, 우리의 형제로서 다가가는 느낌으로 그를 대합시다. 우리는 혁명가들이 체의 정신에서 영감을 얻고, 함께 그들도 국제주의자가 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변화를 위한 투쟁과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투쟁에서 믿음을 구축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이날 "사상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사상은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혁명적 사상과 자기희생의 화신인 체 게바라는 죽지 않은 것입니다"라는 말도 남겼다. 이 말은 카스트로가 즐겨한 말이기도 하다. 상카라는 이 연설 후 일주일만에 혁명동지였던 콩파오레에 의해 살해된다. 그러나 일주일 전에 체 게바라를 기념하며 했던 연설처럼 혁명가는 죽었으나 사상은 죽지 않았다. 상카라의 반제, 자립 노선은 개혁과 혁명을 추구하는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으며, 전 세계의 진보적인 인사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