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음악 강의를 한다. 사실은 대중음악의견가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에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어디든 간다. 전업음악평론가로 살아오는 동안 적지 않은 음악 강의를 하면서 버텼다.
주로 강의를 한 곳은 지역의 도서관이나 평생학습관이다. 공공기관이 아니면 약소한 강의비나마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역음악창작소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특강을 하거나 시민사회단체에서 주최한 강의를 한 적도 여러 번이다.
강의를 할 때 집중력과 반응이 좋은 곳도 대부분 도서관이나 평생학습관이다. 의외로 중장년 세대들이 귀 기울여 듣고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했던 수업은 열기가 엄청났다. 나이 들면서 삶에 여유가 생겨서일까.
반대로 가장 반응이 없는 곳은 대학이다. 젊은 세대가 음악에 가장 관심이 많을 테니 대학 강의가 가장 열띤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웬걸 대학 강의는 반응 없기로는 공무원 대상 강의에 육박한다. 딴 짓을 하거나 자거나 빨리 끝내주기를 바라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질문을 하면 눈총 받기 때문인지 질문도 거의 안 나온다. 물론 내가 강의를 재미있게 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니 이 모든 건 내 탓이다.
음악 강의를 할 때면 늘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많아 음악을 잔뜩 챙겨 들고 간다. 그러다보니 그 음악을 다 듣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상에는 좋은 음악이 정말 많고, 음악마니아의 입장에서는 한 곡이라도 더 들려주고 싶지만 강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무한정 음악듣기를 반기는 이들은 드물다. 가급적 정해진 시간을 지키기를 바라는 눈빛들 앞에서 하염없이 음악을 틀수는 없는 일이다. 강의는 늘 아쉽게 끝난다.
2025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관객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강의를 할 때는 대개 전문가인 내가 주로 이야기를 하고, 다른 분들은 내 이야기와 음악을 듣는데, 그래도 가급적 서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의가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의 경험과 감각과 생각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어떤 음악은 나보다 더 생생하게 호흡한 이들이 있다. 그들의 고백이 터져 나오면 반드시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음악을 잘 알고 있어야만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의 경험과 판단과 감각으로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우리는 그의 입장과 방식에서 배울 수 있다. 그 차이를 확인할 때 세계는 비로소 넓어지고 강의는 강의다워진다.
음악 강의에 오는 분들 중에는 가끔 맹렬한 음악팬이 있지만, 열렬한 음악팬들은 강의를 들으러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비주류/인디 음악가를 거명하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악팬들은 다 아는 음악가를 모르는 시민들이 수두룩하다. 그때마다 대중음악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 확인한다. 세상에는 이른바 전설이라고 불리는 음악가들만 알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그조차도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른다. 한국대중음악상 후보가 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TV에 여러 번 출연하지 않으면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을 음악가들이 허다하다. 세상에 보고 들을 게 너무 많아서이고, 어떻게 찾아들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며, 비주류 음악이 들려주는 사운드와 태도가 낯설어서이기도 하다.
그 이유로 지금 활동하는 음악가들을 최대한 소개하려고 하지만, 잠깐 듣는 경험으로 누군가의 팬이 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들어왔던 음악과 스타일이 다르거나, 자신이 좋아해보지 않았던 장르의 음악에 금세 빠져드는 운명 같은 만남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의 감각은 대체로 닫혀있기 마련인데, 나는 잠시 그 문 앞에서 노크하고 떠나는 사람 아닌가.
그래도 어떤 이들은 마음을 열고 음악을 듣는다. 호기심을 가지고 음악을 듣는다. 처음 듣는 음악가의 음악을 금세 내치지 않고 열심히 듣는 이들이 있다. 음악 강의를 하는 이유는 이런 이들을 만나기 위해 서다. 혼자 아는 척하고 잘난 척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음악의 매력과 만날 기회를 주고, 음악의 가치와 메시지와 역할을 상대에게 전달함으로써 상대의 인식과 감각을 확장하려고 강의하는 것이다. 강의 때마다 나는 새로운 음악, 새로운 사운드, 새로운 태도, 새로운 메시지의 메신저가 되려고 혼자 분주하다.
어쩌다 소개한 음악이 좋아서이거나, 내 이야기가 통하면 반응이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기실 한 번 만나고 다시 만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 잠시 모인 공간의 밀도가 높아지고 모두의 귀가 쫑긋 선다. 눈빛이 초롱초롱해지고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말이 많아지거나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그 마법 같은 순간은 강의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축복이다. 환희다. 물론 번번이 이런 순간을 만나지는 못한다. 무표정한 반응 앞에서 당황하면서 정해진 이야기를 꾸역꾸역 풀어놓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경험과 인식과 감각을 확장하고 돌아가는 이들의 발걸음은 가뿐하다. 그 순간만큼은 음악과 삶의 거리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앞으로도 우리가 음악으로 만나는 일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