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과 조합원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지난 11월 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되찾자 정치기본권! 책임져라 소득공백! 공무원노조 간부결의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11.08 ⓒ민중의소리
공무원과 교원은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업 중 하나로 꼽혔다. 불안정한 경제에 공무원과 교원은 노후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층 사이에선 인기 없는 직업이 되고 있다. 낮은 보수, 경직된 조직문화, 과다한 업무 스트레스, 악성 민원 등이 젊은 공무원과 교원을 현장에서 떠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당사자인 공무원과 교원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 제약을 받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받는 탓이다.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기본권을 확대하고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는 이유다. 국회에서도 그 필요성에 공감하며 관련 입법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헌법 취지 왜곡한 공무원·교원의 정치기본권 박탈
공무원과 교사에게 요구되는 정치적 중립성은 당초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을 단순히 금지하는 취지가 아니었다. 그 발단은 헌법이었다. 헌법 7조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고, 헌법 31조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헌법의 등장은 1960년대 4.19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승만 정권 시절 대통령선거에 공무원과 교원,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동원됐다. 3.15 부정선거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이 아픈 역사를 청산하고자 4.19 혁명 직후 1960년 헌법을 개정할 때 공무원과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내용의 조항이 신설된 것이었다.
문제는 이후 들어선 군사독재정권이 헌법의 취지를 왜곡한 법률을 만들면서 나타났다. 헌법 조항을 보면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보장한다'고 돼 있는데 이를 악용한 것이 5.16 군사쿠데타 이후 등장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다. 박정희 정권은 1963년 국가공무원법을 만들면서 '공무원 정치활동 금지' 조항을 넣었다.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이 공무원과 교육을 국가 통제의 도구로 삼으려고 한 것이었다.
국가공무원법은 일제강점기의 잔재이기도 하다. 법제처가 발간한 '대한민국 법제50년사'에 따르면, 국가공무원법이 법률의 형식으로 처음에 제정된 것은 그보다 전인 1949년이며, 내용은 일제강점기의 임용·복무 등에 관한 몇 개의 칙령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데 지나지 않았다. 그 뒤 미국으로부터 행정학이 도입됨에 따라 관리학적 입장에서 인사 문제에 대한 이해 및 관심의 정도가 점점 높아지게 되면서 오늘날의 국가공무원법이 탄생했다.
애초 정치적 외압에 의해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는 헌법의 내용이 국가공무원법에서 변질되면서 공무원의 개인 표현의 자유와 정치 활동의 자유까지 박탈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지방교육자치제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이후 교육감과 교육위원의 자격에 교사와 정당 당원이 배제된 것이 대표적인 현상이다. 국가공무원법은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제한한 교원공무원법을 비롯해 지방공무원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해외 주요국에는 없는 제도, 공무원의 정당 가입 금지
해외 주요국에서도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다양한 입법례가 존재한다. 다만 우리나라와 달리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게 아니라 보장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22년 발표한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연구' 자료에 따르면, 영국·미국·프랑스·독일 등은 공무원의 정당 가입을 제한하지 않고 있으며 정치자금 기부도 가능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공무원의 정당 가입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
또한 미국은 대다수 일반 연방공무원을 '정치적 행위가 덜 제한되는 공무원'으로, 고위 경력직이나 국가 안보 관련 기관 공무원 등은 '정치적행위가 더 제한되는 공무원'으로 구분해 각각 정치적으로 제한되는 행위의 정도를 달리하고, 금지·허용 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에도 정치활동 측면에서 공무원을 크게 세 부류로 구분하며, 현업 및 비사무직 직급의 공무원은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공무원', 고위 공무원단 등은 '정치적으로 제한된 공무원', 이 두 부류에 해당하지 않는 '그 외의 공무원'으로 구분 하여 활동 범위를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기준으로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적 행위를 전방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해외에선 결코 통상적이지 않은 법적 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2011년 국제연합(UN)의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2015년과 2016년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준 적용위원회 등은 우리나라에 대해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적 활동이 과도하게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정치적 자유를 국제노동기준에 맞게 보장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지지부진했던 국내 법 개정 논의, 이제 첫발 뗐다
그만큼 국내에서도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고 있다. 2020년 11월엔 국민 10만 명의 동의를 받은 '공무원·교원 정치기본권 보장 관련 법률 개정에 관한 청원'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공론화가 시작된 것이었다. 이 청원은 관련 법률을 개정해 공무원과 교원의 정당 가입 및 활동의 자유 보장, 정치적 표현의 자유 확대(정치단체 활동, 선거운동 등 금지 조항 완화), 집단행위 금지 조항 삭제 등 직무와 무관한 범위에서 정치기본권을 보장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 채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후 2024년 5월 22대 국회가 새롭게 임기를 시작했다. 1년 반이 지나는 동안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기본권 보장 관련 법률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다. 국가공무원법과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국가공무원법 65조는 공무원의 정치운동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 중 공무원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는 1항을 삭제하고, 공무원의 어떠한 선거운동도 금지하는 2항 역시 '지위를 이용하는 경우'로만 제한하자는 게 발의된 법률 개정안들의 공통된 내용이다. 공무원들의 집단행위를 금지하는 66조도 삭제하자는 제안도 다수 있다. 다만 이러한 법률 개정안들은 지금껏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한 채 잠들어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윤건영 의원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이번 정치국회에서 민주당은 상정해서 논의하자고 했지만 국민의힘이 반대했다"며 "민주당은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만큼 계속 상정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그에 반해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은 논의의 첫발을 뗀 상태다. 발의된 교육공무원법 개정 법률안의 공통되는 내용은 유·초·중등교원 또는 교육공무원도 교육감선거 또는 공직선거에 입후보 할 수 있도록 휴직 근거를 마련하는 것과 교원은 공무원의 정치운동을 금지하는 국가공무원법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지난 9월 22일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한 차례 논의가 됐다.
법안소위원장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당시 회의를 마치면서 "개헌을 논의해야 될 무르익은 시점이 왔다고 여야 모두 말하고 있는데, 교사의 정치기본권도 (논의해야 될 시점이) 많이 무르익은 사안이 맞는 것 같다"며 "다만 여러 가지 디테일에서의 갑론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저희가 이번 시간 안에 일사천리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밝혔다. 이어 "향후 여야를 막론하고, 다른 상위위와도 부딪히는 부분이 있어서, 토론회나 간담회 이런 것들을 많이 해서 현장 의견들을 많이 청취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교육위가 새로운 새벽을 여는 상임위가 되면 아마 행안위를 비롯해 다른 곳들도 따라와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고 의원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향후 계획에 대해 "그동안 국정감사를 하느라 관련 법안 논의를 이어서 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법안소위가 열리면 추가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연내 법 개정을 목표로 국회 앞 농성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