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핵 재처리 등 ‘핵무장’ 의제를 끄집어내는 장면을 보고 가슴이 꽉 막혔다. 민감한 안보 의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대통령의 협상력에 언론은 찬사를 보냈고, 미국으로부터 큰 양보를 얻어냈다며 침이 마르도록 상찬하고 있다. 뛰어난 외교력은 칭찬받을 일이지만, 협상 내용을 덮어놓고 환호할 일은 아니다. 특히, 핵 재처리가 대한민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일인가? 생각할수록 고구마를 통째로 삼킨 듯 답답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하고 있다. 2025.10.29. ⓒ뉴시스
문명사회라면, 인류 양심의 시선으로 본다면, ‘핵(특히 군사적 핵)’은 거리를 두고 감시와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지만, 대통령의 한마디로 선한 ‘물성’으로 둔갑했다. 애국주의 감성을 자양분 삼아 지극한 선이 되어 가고 있다. 20세기 일본에서 우주소년 아톰이 핵의 부활을 불러왔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핵추진 잠수함이 아톰을 대신하고 있다. 핵을 둘러싼 ‘비판적’ 인식을 거세시킨 대통령의 언행은 역사의 후퇴로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곳곳을 다니며 국민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국민주권정부’를 실현하려는 파격적인 행보로 보인다. 관련 영상을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그런데 왜 안보의 영역만큼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안보 문제일수록 국민과 먼저 대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이 배제된 의사 결정은 반드시 엉뚱한 길로 빠진다. 국민이 빠진 자리에 안보 장사치만 우글거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군사적으로 비핵 지향 국가다. 핵 무장할 의사가 없음을 국제사회에 지속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평화 지향을 기반으로 경제 규모를 키워왔다. 그런데 대통령이 뜬금없이 핵 재처리를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심각한 이율배반이다.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뽑아내는 핵 재처리는, 핵무기를 제조하는 과정의 일환이다. 핵 재처리를 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공정처럼 둘러대는 모든 언설은 거짓이다. 이 대목에서 대통령은 국민 앞에 솔직해야만 한다. 만일 핵 재처리가 핵무장임을 몰랐다면 정부 여당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만큼 대통령의 주변에 ‘핵’ 인사들만 우글대고 있다는 반증이다. 핵 관련 비판력을 상실한 자칭 진보 언론의 잘못도 크다고 본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핵발전소 추가 건설 입장을 묻는 기자에게 “원전을 지을 곳도 없다”라며 신규 핵발전소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나는 대통령에게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핵 재처리 공장을 건설할 땅은 있습니까?” 더 나아가 “핵 재처리 공장을 건설할 돈은 있습니까?”라고.
먼저, 핵 재처리 공장 부지는 핵발전소 부지보다 훨씬 마련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핵발전소 부지 확보에 난색을 표한 까닭은 핵발전소가 가져오는 환경적 위험성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핵 재처리 공장의 위험성은 핵발전소보다 훨씬 크다. 죽음의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가져다가 분해 및 분쇄하여 플루토늄을 뽑아내는 과정은 엄청난 오염을 발생시키는 공정이다. 핵 재처리 공장 주변은 죽음의 땅 또는 강과 바다가 된다. 사용후핵연료는 손대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월성원전(자료사진) ⓒ뉴시스
다음으로, 핵 재처리 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 드는 돈은 ‘천문학적 비용’이란 수식어로도 부족하다. 일본은 로카쇼무라에 어렵게 건설한 핵 재처리 공장을 40년간 운영하고 폐쇄하기까지 우리 돈으로 약 150조 원의 비용을 추산하고 있다. 산업적 생산성이 전혀 없는 시설을 건설, 운영, 폐쇄하는 데 무려 150조 원이 투입된다. 이러한 사업을 국민적 논의 없이 대통령이 추진 의사를 밝히는 것은 ‘국민주권시대’에 온당한 정책 결정이 아니다.
대통령이 핵 재처리에 숨겨진 그늘을 제대로 보고받았을까? ‘핵’ 인사들의 오염된 보고만을 받았을 것이라고 위안 삼아야 답답한 가슴에 한줄기 숨구멍이라도 뚫리지 싶다. 대통령 주변의 양심적 인사들에게 읍소한다. 잘못된 애국주의에 매몰되어 핵무장의 길로 들어서지 않길 바란다. 핵 재처리에 발을 들이면 흡혈귀에게 피를 빨리듯 혈세를 탕진하는 망국의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