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룸306이 만든 멜로드라마 연작, [잔향]

흔들리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마음의 여정을 기록한 음반

룸 306 ⓒ룸306 인스타그램

음악 리뷰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창작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일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했고, 이 같은 구조와 사운드를 구사했는지를 알아내는 일이다. 그다음 순서는 그 의도를 정확하게 구현해 냈는지 평가하는 일이고, 그 과정에서 창작자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맥락과 가능성을 찾아내는 일이다. 음반을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건 중요하지 않다. 음반을 듣고 싶어지는 비평을 써도 좋겠지만, 비평은 평가임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룸306(Room306)의 새 음반 [잔향]은 창작자의 의도를 확인하기 쉬운 편이다. 12곡의 수록곡 가운데 가사가 있는 가창 곡 9곡의 상황과 감정, 태도가 일관되게 이별의 시간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대개 이별 후에 찾아오는 감정과 시간을 노래하고 연주하는 곡들은 금세 쓸쓸하게 할 만큼 감정의 진폭이 큰데, 그 밀도와 강도로 금세 스며든다. 이미 수많은 곡에서 접했던 이야기를 이해하고 수용하기는 어렵지 않다.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이야기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잔향]이 돋보이는 부분은 이처럼 상투적이거나 관습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남다르고 생생하게 구현하는 능력이다. ‘마중Greeting’부터 ‘매듭 Sealing’까지 이어지는 11곡은 “여기 남은 모든 마음을” 계속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멀어지며 밀려오는 순간들 속에 / 조금 조금 놓아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연작처럼 구성했다.

Official Audio Room306 - 마중 Greeting (Greeting)

“이 곳에는 / 남은 것 하나 없죠”라고 탄식하는 노래 ‘이사Moving’는 이별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이가 마주해야 하는, 폐허와의 조우를 기록한다. 애달프고 그립다고만 말하는 노래가 아니다. “오랜 시간동안, 이 곳에 / 나의 희노애락이 / 마치 영원할 것처럼 / 뿌리 내렸는데”, 그 믿음과 안정감을 잃어버린 이의 상실감으로 잠입하는 노래다. ‘회수 Collecting’에서도 방향을 잃고 헤매는 상황, 거두지 못한 자신의 과거까지 담아냄으로써 상황에 더 침잠한다. ‘아득 I Dimming I’를 거쳐 도착한 다섯 번째 곡 ‘여정 Traveling’에서 ‘멀어져’, ‘서러워’, ‘울어대며’, ‘떠나는걸까’라는 서술을 사용한 이유는 거리의 차들조차 이별 드라마로 다가올 만큼 여전히 이별을 앓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타이틀곡 ‘반동 Backfiring’ 또한 이별의 순간 찾아오기 마련인 통제 불능의 내적 갈등과 불화를 드러내면서 평화와 자신감을 잃어버린 상황을 보여준다. 소중했던 존재와 헤어진 뒤 삶을 온전히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별은 그 순간만 강타하는 게 아니라 그 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시간이 흐르고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면서 우리는 겨우 버틴다. ‘영원 Lasting’은 그렇게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렇게 노래하기 위해 ‘반동 Backfiring’은 갈등의 시간으로 돌아가 감정을 터트려야 했다. 마음을 베이지 않고 헤어질 수 있는 관계는 없다. 덕분에 음반의 후반부가 ‘풍화 Weathering’, ‘전송 Sending’, ‘매듭 Sealing’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자연스럽다. 아물지 않을 것 같았던 상처의 피딱지가 희미해지고, 언젠가부터 미움보다 미안함과 그리움이 커진다. 고맙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별에 마침표를 찍는다.

Official Audio Room306 - 반동 Backfiring

룸306은 이 각각의 상황에 맞는 가사와 음악을 직조해 OST처럼 연결하고 구성했다. 수록곡들은 한 편의 음악극처럼 등장하고 퇴장한다. 보컬의 목소리는 그때마다 배우가 연기하듯 뒤바뀐다. 팝과 록과 일렉트로닉의 언어를 활용한 음악은 늘 가슴 시린 멜로디로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창출하는데, 곡마다 다른 어법을 활용한다. 현악기 연주를 강조해 발라드처럼 들리는 곡이 있는가 하면,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를 강조한 곡도 있다. 록의 어법도 빠지지 않는다. 룸306은 다양한 어법을 활용하면서 과하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관습적인 어법에 안주하지 않는다. 감정을 강조해 힘을 불어넣는 곡과 간소하게 수식하는 곡이 엇갈리고, 매력적인 연주를 빠트리지 않는 음악은 곡의 드라마에 정확하게 조응하면서 변화와 완성도를 함께 책임진다.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음악가임을 보여주는 작법은 곡마다의 차이와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면서 음악의 완성도를 담보한다. ‘이사 Moving’의 중반부에서 이어지는 아코디언 연주, ‘여정 Traveling’ 중반부의 클래식 기타 연주가 만들어내는 곡의 품격이 그 증거 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장르가 아니라 곡에 어울리는 사운드이며, 그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정조와 아름다움이다. 룸306은 음반의 드라마를 쌓고, 그에 적합한 곡을 만들었으며, 처연한 여운을 불어넣었다. 예술가 자신의 이야기였거나 듣는 이들의 이야기일 노래들이다. 누군가와 헤어져 보았거나 언젠가 헤어질 이들은 그 순간의 기억과 눈물과 그리움을 떠올리면서, 또는 각오하며 듣게 될까. 룸306은 그들에게 고통은 어떻게든 끝날 것이고, 이렇게 매듭처럼 맺힌 노래의 잔향이 남는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한 장의 음반으로 관람하는 멜로드라마 연작.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지려나. 아니면 다시 금세 무너져 내리려나.

Room306 '잔향 Leaving' Full Album Lyrics Video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