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을 만세] 마을공동체, ‘사업’과 ‘운동’의 경계에서

학령인구 절벽과 지방소멸의 위기 극복 해법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2023년 10월, 묘량면 학교 교사, 묘량면 기관사회단체장, 학부모 등이 모여 ‘묘량교육공동체협의회’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필자 제공

12월은 ‘정산’의 시간이다. 올해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위해 교부받은 사업비 집행에 대한 영수증 챙기고 증빙 서류를 갖추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2015년 교육청이 공모하는 ‘마을학교’ 사업을 시작한 이래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보조금을 받아 사업을 수행하는 우리는 ‘보조사업자’로 명명된다.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을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은 국가 행정 시책을 ‘보조’하는 수준의 단순한 일이 아니다. 주민주도성을 행정 보조의 역할로 축소하거나 행정과 민간의 관계를 수직적인 위계 구조로 설정하는 것은 협치의 본질을 퇴색시킨다. 민을 단순 조력자가 아닌 자율적인 주체로 존중하고 협력적인 파트너십 구축의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보조금 사업은 행정이 마을에 투입하는 ‘트로이의 목마’로 전락한다.

행정 본연의 임무는 주민 통제가 아닌 주민 활동에 대한 지원과 촉진이다. 보조금 사업은 주민들의 자율적인 활동을 촉진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마을학교 보조금 사업을 통해 주민들과 다양한 마을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연결되고 관계망이 튼튼해졌다. 마을의 일에 참여하여 자그마한 역할이라도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 일상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된 마을학교 사업 덕분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이 정한 틀에 맞춰 마을의 사업을 계획해야 하고, 행정이 만든 지표로 마을의 활동을 평가받아야 하는 현실은 매년 겪는 일인데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정산의 압박(?)속에서 다시 이 질문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마을은 사업일까, 운동일까?

자본주의가 토지, 노동, 화폐를 상품으로 만들고 개발지상주의에 몰입한 대가로 사람들 간의 연결망은 단절되고 공동체는 해체됐다. 개발과 성장의 폭주기관차 위에서 벌이는 축적과 소비의 향연을 끝내자는 말은 삶의 철학과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없고서야 불가능한 일일 터이다. 이로부터 ‘마을’이라는 인간 생활의 최소단위를 생태적, 인간적으로 복원하고 풀뿌리 단위의 자립과 자치를 실현하는 문제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됐다. 지속 불가능한 삶에 대한 위기의식이 ‘마을’을 소환했다. ‘마을’이라는 이름을 달고 벌어지는 시민의 활동은 자율, 연대, 생태, 자립, 자치와 같은 삶의 방식으로 사회를 재구성하려는 집합적인 운동이다.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각자도생의 방식에서 벗어나 호혜와 연대, 협동의 방식으로 삶을 재조직하려는 노력이다. 공동체는 완결적 실재라기보다는 과정이자 방법론에 가깝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공동체적인 방법으로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적극적이고 실현가능한 대안을 창조해나가는 과정이 곧 ‘마을공동체’이다.

경제위기와 생태위기가 중첩된 복합적인 위기 앞에서 삶의 대안을 찾고자 하는 열망은 전국적인 마을 만들기 운동을 촉발시켰다. 정부도 호응했다. 파괴적이며 각자도생하는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새로운 성장도, 국가도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중앙부터 지방까지 정책 기조로 ‘마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정부 보조금이 풀리면서 ‘운동’이었던 마을은 ‘사업’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로부터 마을은 더 복잡해졌다. 마을 일에 속도가 붙고 확장되는 만큼 마을공동체 활동가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보조금을 받아 행정의 뒤치다꺼리나 해주는 단체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실적을 위한 사업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며 소진하지 않기 위해, 장시간 저임금의 관계 노동에 지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운동과 사업의 경계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상시적으로 부닥치는 ‘신뢰의 위기, 경영의 위기, 사상의 위기’(국제협동조합연맹, 1980년 레이들로 보고서)를 극복해 나가야 할 과제가 제기되었다.

어르신들이 주간보호센터에 모여 텃밭에서 함께 기른 작물을 다듬고 있다. ⓒ필자 제공


제도 속으로 들어간 마을공동체가 표준화와 획일화, 실적 위주의 압박에 포획당하지 않고 운동지향성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는 체제 유지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공동체’를 이용하고 동원하기도 한다. 가까운 예로 ‘새마을운동’이 그랬다. 새마을운동은 군부 독재 시대 관료적이고 효과적인 주민 동원 체제로 기능했다. 오늘날 마을공동체 운동 제도화의 귀결점은 새마을운동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새마을운동이 체제 유지 강화에 복무했다면, 마을공동체 운동은 주민의 자율성과 자치의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 정책을 잘 설계한다고 해서 저절로 결과값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마을 만들기 정책 설계의 가설, 즉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면 민주주의는 발전할 것이다’ 혹은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면 주민자치는 확대될 것이다’라는 명제가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증명되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개혁과 진보는 정책 기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의 각성과 연대에 기반한 공존과 상생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어느 때보다 공동체적 실천이 필요하다. 운동과 제도가 결합하고 행정과 민간이 협력하는 시대, 공동체 운동의 새로운 문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 주민이 주도하는 협력과 자치의 마을을 만드는 과정에서 공동체는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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