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국민적 분노가 커지는 가운데,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쿠팡 대표와 직원들을 만나 오찬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김 원내대표는 “공개된 만남이었고, 국회의원은 누구나 만날 수 있다”며 “대화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런 국면에서 여당 원내대표가 쿠팡 대표와 식사 자리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공적 책임을 망각한 처신이며, 국민의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행동이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은 단순한 기술적 사고가 아니다. 피해 가능 인원만 3,370만 명에 달하고, 이미 금융·통신 분야에서 피싱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쿠팡은 초기 대응 과정에서 “유출이 아닌 노출”이라고 표현하며 사태를 축소하려 했고, 피해 규모가 커지자 뒤늦게 입장을 바꿨다. 여기에 경영진이 대량의 주식을 매도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국민의 분노는 더욱 증폭됐다.
최근에는 조직적인 대관(對官) 로비 의혹까지 제기됐다. 쿠팡이 서울 강남역 인근에 공식 명칭 없이 ‘비밀 사무실’을 두고, 40여 명의 고위 대관 인력을 배치해 정부 부처, 규제 당국, 언론 대응을 총괄해왔다는 것이다. 김범석 의장이 한국 법인에서 발생한 각종 사고의 책임을 피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런 대관 조직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2년간 쿠팡 및 계열사에 채용된 퇴직 공직자 15명의 출신을 보면, 경찰청·검찰청·공정거래위원회·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대통령비서실 등 권력기관이 망라돼 있다. 5개 계열사의 전·현직 대표 역시 다수가 법조인 출신이고, 금융 계열사도 금융감독기관 출신으로 채워졌다. 이쯤 되면 ‘민관 회전문 인사’의 전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은 쿠팡 본사를 사흘간 압수수색했고, 국회는 김범석 의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의 청문회 출석을 검토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 수장 격 인물이 사고 당사자들과 오찬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은 “정치가 또다시 기업의 편에 서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대통령이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언급하며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마당에, 여당 원내대표가 사과는커녕 ‘뭐가 문제냐’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여당의 최고 책임자가 이 정도 인식이라면, 정부와 집권당이 기업 권력에 맞서겠다는 말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