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일, 스물여섯 살의 나는 '한국타이어'라는 거대한 공장의 문턱을 넘었다. 내 신분은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었다. 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몸 건강히 2~3년만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으로 발탁될 수 있다 달콤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노동조합이라는 단어가 내 삶과 연결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노조는 대기업 정규직이나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만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열심히 일해서 '생산직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공장 안에서 시작되었다.
희망 고문과 군대 문화 속에서
자신만만했던 체력은 4조 3교대라는 시스템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5일 단위로 밤낮이 바뀌는 생활은 신체 리듬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적응할 만하면 다시 리듬이 뒤집히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육체적 고단함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정신적인 굴욕감이었다.
공장 안에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명확한 계급이 존재했다. 원청 관리자나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무조건 깍듯해야 했다. "인사를 잘해야 한다", "토 달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군대에서나 겪었던 수직적인 문화가 작업장을 지배했다. 불합리한 업무 지시가 내려와도 거부할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의 눈 밖에 나면 '정규직 발탁'이라는 꿈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공포가 나를 옭아맸다. 특근은 노동자의 선택이어야 했지만, 관리자들은 순번을 정해 강제로 시켰다. 내 의견을 말하면 '이상한 사람', '모난 돌' 취급을 받았다. 나는 그저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훗날의 정규직 명찰을 달기 위해 꾹 참고 몇 년을 인내했다.
완제품 타이어를 컨테이너에 상차하는 모습 ⓒ필자 제공 원청 공정 사이 '샌드위치'가 된 하청 노동
사람들은 묻는다. 타이어 공장에서 하청은 무슨 일을 하느냐고. 우리의 노동은 원청 정규직들의 공정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꽉 끼어 있다. 타이어의 원재료를 운반해 원청 라인에 넣어주는 시작점부터, 타이어가 완성되기 직전 거친 표면을 다듬는 마무리 작업, 불량이 난 타이어를 수리하는 일, 그리고 무거운 타이어를 컨테이너에 싣는 물류 작업까지. 이 모든 것이 우리 하청의 몫이다.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가고, 분진을 뒤집어써야 하며, 육체적으로 가장 고된 공정들이다. 원청 정규직들이 기계 옆에서 비교적 깨끗하게 일하는 동안, 우리는 이처럼 몸이 망가지는 가장 위험하고 더러운 일에 내몰려 있다. 특히 타이어 원재료를 나르고 분진을 뒤집어써야 하는 작업장에서는 맑은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이고, 동료들은 늘 파스를 달고 살며, 30대에 벌써 온몸이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원청은 정교한 기계가 돌아가는 핵심 라인을 맡고, 우리는 그 기계가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궂은일을 도맡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원청은 '책임의 소지'가 발생하기 쉬운 공정들을 외주화했다. 불량의 책임을 묻기 쉽고, 육체적 골병이 들기 쉬운 위험한 업무를 하청에게 떠넘긴 것이다. 우리는 원청의 생산 라인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공장을 돌리지만, 정작 공장의 구성원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유령 같은 존재다.
화재, 해고, 그리고 노조의 시작
2021년, 한국타이어 창사 이래 처음으로 현장 총파업이 조직되었다. 하지만 노조가 없는 우리 하청 노동자들은 그 파업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청업체는 휴업 공지를 내렸고, 우리는 임금의 70%만 받고 강제로 쉬어야 했다. 심지어 그 파업조차 당시 한국노총 소속 노조 위원장의 직권 조인으로 허무하게 끝이 났다.
집에서 망연자실하게 쉬고 있을 때, 현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현규형, 우리도 노조 해봐요." 그 전화 한 통이 모든 것을 바꿨다. 우리는 그렇게 한국타이어 사내하청지회 설립 준비를 했다. 어렵게 조직화를 해나가던 2023년 3월 12일 오후 10시 대전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전 국민이 알 만큼 큰불이었다. 공장이 멈추자 가장 먼저 잘려 나간 것은 우리 비정규직들이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 길러온 습관대로, 관리자들 말 잘 듣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최대한 '밉보이지 않게' 행동했다. 몇 달만 잘 참으면 상황이 잘 정리되어 다시 예전처럼 복귀해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원청은 우리의 희망과 인내를 짓밟았다. 하청 노동자 260여 명이 '권고사직'이라는 이름으로 길거리로 내몰렸다. 말이 권고지 사실상의 해고였다. 당시 원청은 이들에 대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노조를 조금만 더 빨리 설립했더라면 동료들을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우리는 조직화에 더욱 매진했고 결국 사내하청지회 깃발을 띄울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사무실도 없어서 선전지 뽑는 것도 일이었지만 정규직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의 연대와 큰 도움으로 우리는 버틸 수 있었다.
금산공장에서 TBR 타이어 표면을 다듬는 트리밍 공정 ⓒ필자 제공
노조가 만든 변화,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믿음
노조가 생긴 뒤 많은 것이 변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을 고발하며 위험한 현장을 개선했고, 숨 막히던 수직적 문화도 깨뜨렸다. 이제 관리자들은 우리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거나 부당한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 연차는 근무 전날이나 당일에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잔업, 조출, 특근 등의 연장근로도 이제는 순번제 강제가 아닌 본인의 의사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힘든 업무를 하청에게 떠넘기던 관행에도 제동을 걸었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비조합원인 현장 관리자나 동료들 사이에서도 지회가 하는 활동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의 목소리가 수시로 들려온다. 이는 여전히 공장 내에서 크고 작은 화재 사고가 반복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내하청지회가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그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지 못했기에, 많은 동료가 여전히 가입을 망설이고 있다. 우리는 이들이 망설임을 거두고 당당히 함께할 수 있도록, 더욱 단단하게 뭉쳐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진짜 사장을 찾아서, 그리고 당연한 노동자의 삶
하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우리는 하청업체 사장들과 교섭을 진행하고 있지만, 2023년부터 2025년이 된 지금까지도 답보 상태다. 법적으로는 하청업체 사장이 사용주임에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임금, 인력, 작업 조건 등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진짜 사장'은 원청인 한국타이어이다.
우리는 답 없는 현실을 뚫기 위해 국회의원실을 통해 원청, 하청업체, 노조가 만나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내년 3월 시행될 노조법 2·3조 개정(일명 노란봉투법) 전에 선도적으로 원-하청 교섭을 해보자고 제안했지만, 원청은 "법이 바뀌면 생각해 보겠다 뒤로 물러나 있다. 작년 12월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불법파견 소송)의 결과도 기다리고 있으며, 1심 결과는 2026년에 나올 예정이다.
다른 하청 사업장에 비하면 우리는 배부른 투쟁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가 50%에 달하거나 연차조차 마음대로 못 쓰는 곳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타이어 하청 노동자들 역시 정규직 대비 현격히 차이 나는 상여금과 수당, 무엇보다 고용 불안 속에 살고 있다. 타이어 공장은 언제든 화마(火魔)가 나타날 수 있는 곳이다. 화학약품을 쓰는 타이어 공장의 특성상, 한번 불이 나면 쉽사리 잡을 수 없다. 2년 전 대전공장 화재와 최근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화재가 보여주듯, 사고가 터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장 약한 고리인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대전공장 화재 당시에는 하청 노조가 없어 260여 명이 속수무책으로 길거리로 내몰렸지만, 노조가 있었던 금호타이어의 경우와 비교하면 희비가 극명하게 갈린다.
2025년 11월 8일 조합원들과 처음으로 가본 전국노동자대회 ⓒ필자 제공
나와 내 동료들의 바람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20대 때 꿈꿨던 것처럼, 그저 내가 일하는 곳을 당당하게 말하고 싶을 뿐이다. 어디 가서 무슨 일 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름도 낯선 하청업체 이름을 대며 마음속으로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한국타이어 다닙니다"라고 당연하게 말할 수 있는 권리이다.
내가 지회장으로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한국타이어에 다니는 모든 하청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이 말을 하고, 정년퇴직할 때까지 건강하게 회사를 다니는 것이다. 나와 내 가정, 그리고 회사를 위해 기계의 부속품이 아닌, 대한민국 노동자로서의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투쟁이 마침표를 찍을 순간이다. 우리가 당당해지는 그날, 한국타이어는 단순히 생산량만 높은 회사가 아니라,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진짜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다.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샌드위치' 부속품이 아니라, 당당한 노동자로 인정받는 날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싸운다. 10년 넘게 기다려온 그 '당연한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