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가족 여행지는 경상남도 남해였다. 고향 집을 증축해 가까운 사람들과 공유주택으로 사용하는 지인 덕분에 3일간의 편안한 휴가를 보냈다. 서늘한 흙집에서 마음껏 쉬었고, 옥색 바다를 보았고, 유배 문학관과 독일마을을 둘러보며 이주와 노동과 인간, 정치와 양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주 은모래 해변 길목, 마을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독립서점에 가서 책도 샀다. 딸은 젊은 여성 시인이 쓴 산문집을 골랐고, 아들은 마음에 담아 둔 책 『발터 벤야민과 도시산책자의 사유』를 발견하곤 기뻐했다. 나는 어느 조합원이 읽고 기부했다는 쉼보르스카의 유고 시집 『충분하다』를 30%나 할인된 가격으로 샀다.
세계와 자연의 섭리, 실존하고 소멸하는 존재 고유의 역동성에 관한, 그것을 함부로 재단하는 인간의 불완전성, 재현 불가능성에 관한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의 시편들을 읽은 기억이 있었다. 언젠가 종로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중고 서점에서 몇천 원에 구입했던 시집 『끝과 시작』, 인간의 손쉬운 믿음에 관한 명징하고 간결한 페러독스가 담긴 시구를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모래 알갱이라 알고 있지만/ 그 자신에게는 알갱이도 모래도 아니다/ (……)/ 창틀 위로 떨어졌다 함은 우리들의 문제일 뿐 / 모래 알갱이에겐 전혀 특별한 모험이 아니다/ 어디로 떨어지건 마찬가지/ 벌써 착륙했는지, 아직 하강 중인지/ 분간조차 못하기에 -쉼보르스카의 시「모래 알갱이가 있는 풍경」중
남해 독립서점에서 산 시집에는 ‘2020년 12월 2일, 목동 교보문고에서, ○○가 ○○ 선생님께’라고 쓴 작고 귀여운 글씨가 있었다. 쉼보르스카는 정말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코로나로 만남이 힘들어진 겨울, 이 시집이 선생님의 연말을 포근하게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사랑한다고. 2020년 12월 2일 목동에서, 누군가의 사랑에서 출발한 이 시집은 어떤 모험을 하며 어떤 우연으로 나에게까지 왔을까.
첫 번째 진열대엔/ 돌멩이가 놓여있다./ 우리는 그 돌멩이에서/ 무언가에 긁힌 듯/ 희미하게 끼적거린 미세한 자국을 본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우연이 정교하게 빚어낸 작품일 뿐이라고.
-쉼보르스카의 시 「메모」 중
그러나 어딘가 긁힌 존재의 미세한 흔적을 ‘우연’일 뿐이라고 단정할 때, 그 자국에 관한 질문과 망설임이 없을 때,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생략된 실체와 진부한 결론뿐이라고, 시인은 말했다.
2025년 가을에도 ‘생략된 실체와 진부한 결론’은 하강인지 착륙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게 무수히 도착했다. 누군가의 노동의 배후에, 죽음의 뒤편에, 삶의 흔적에, 숲과 단풍나무와 땅과 들짐승의 생애에. 그런 가을, 나는 광화문 빌딩 앞을 지나다가 서점에 들어가 시집 한 권을 샀다. 시인 우은주의 첫 시집이었다. 나는 시인을 조금 알고 있었다. 돌멩이를 모으고, 잘려 나간 나무를 슬퍼하며 떨어진 도토리를 줍고, 서랍에 넣어둔 돌과 도토리를 해마다 꺼내 보고 쓰다듬고 이름을 부르는, 오래 시를 써온 시인의 조금 늦게 도착한 시집은 60개의 자국에서 귀 기울인 60개의 마음.
좋아하는 마음을 멈춘 적 없어서/ 한 사람이면서 여럿, 하나면서 여러 이름이/ 있었던 사람, 언젠가 없을 사람들을 부른다// 나에게 많은 건 망설임/ 이렇게 말해도 될까?/ 묻고 또 묻는 마음 -우은주 시집 『좋아하니까 말해 주는 거야』시인의 말에서
시처럼 쓰인 시인의 말을 들추며 나는 남쪽 바다를 경유해 내 책장에 꽂힌 폴란드 시인의 시집을 떠올렸고, 두 시인의 시집을 나란히 펼쳐놓고 한 편씩 번갈아 읽어갔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을 먼저 보낸 사람들은/ 서로의 돌을 빌려 와/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마모된 모서리에서 노란 물소리가 들린다// 물이 잠든 밤마다 사람들은/ 새벽 별빛을 길어 와/ 서로의 아이를/ 씻겨 준다 - 우은주, 「4월」
여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장소와 그 주변 지역들이 있어./ 그중 어떤 곳은 네가 특별히 좋아해서/ 거기에 고유한 이름을 붙이고,/ 위해(危害)로부터 그곳을 지켜내고 있는지도 몰라. - 쉼보르스카의 시 「여기」
무거운 돌 하나를 들춰 암흑을 꺼낸다 얼굴 몇 개가 빛 속으로 사라진다 입 없는 다리가 1층 신발 코너를 오래 돌다가, 물건을 하나 집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다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본다 오래 울어 뭉크러진 그림자가 지나가는 것을 쳐다본다// 나는 여기 있고/ 나는 지나갔다 - 우은주
누군가는 황금마차에 태워져 이곳에 왔고./ 누군가는 대학살을 위한 수송 차량에 실려 여기에 왔다.//(……)// 세상의 표면을 뒤덮고 있는 수억만 개의 얼굴들/ 나의 얼굴, 당신의 얼굴, 그리고 누군가,/ 당신이 결코 알 수 없을 어떤 인물의 얼굴./ 어쩌면 자연은 우리에게 속임수를 쓸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모든 걸 유지하기 위해, 요구에 부흥하기 위해/ 자연은 낚시질을 시작한다./ 망각의 거울 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들을 건져 올리기 위해. - 쉼보르스카
폴란드는 한국이 아니고 쉼보르스카는 우은주가 아니지만, 한국은 폴란드가 아니고 우은주는 쉼보르스카가 아니지만, 무거운 돌을 들춰내 암흑을 바라보는, 망각의 거울 속에서 당신과 나, 그리고 수많은 누군가의 얼굴을 건져내고, 이름을 붙이고, 이름을 부르고, 오래 울어 뭉크러진 그림자를 지켜보며 여기, 위해(危害)로부터 그것들을 지켜내자, 새벽 별빛을 길어 와 서로의 아이를 씻겨 주는 그들은 시인(詩人).
문학은 배고픈 사람을 구해 주지 못하지만 배고픈 사람이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오래전 문학평론가의 말을 떠올리며, 목동에서, 남해에서, 종로와 광화문에서, 더 먼 곳으로부터 나에게 온, 말할 수 없는 쓸쓸함과 때론 굶주림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했을지도 모를 책들을 생각하며, 여전히 시가, 문학이, 책이 사라지지 않는 인간 세상의 신비에 대해 생각하며, 서기 2025년 저물녘,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와 한국 시인 우은주를 당신의 생의 하루에 띄운다.
시집 '충분하다-쉼보르스카', '좋아하니까 말해 주는 거야-우은주' ⓒ문학과지성사,걷는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