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축사사무소에서 건축설계 업무를 하는 30살 노동자이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일반노조 산하 청년모두지부의 조합원이다. 나의 업무에 대해 정확하게 소개하자면, 건축설계는 건축주의 요구에 따라 건축물을 아름답고 사용하기 편리하고 경제적이도록 디자인해 도면과 서류를 작성하여, 건축계획이 관할 관청에 인허가를 받아 실제 건물로 시공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이렇게 건축설계 업무를 맡아 건축물의 계획과 디자인, 시공관리까지 맡는 사람들을 ‘건축가’라고 부른다. 만약 대학교에서 건축전문대학원이나 5년제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3년의 실무경력을 쌓은 후 건축사 시험에 응시해 합격하면 전문직인 ‘건축사’가 될 수 있는데, 건축사에게는 직접 건축물을 설계하고 건축사사무소를 차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낭만적이고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에서 마주한 건축설계업계의 현실은 드라마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김동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청년모두지부 조합원이 민주노총 팝업스토어에서 책갈피 만들기 했을 때의 사진 ⓒ필자 제공
공짜야근과 덤핑수주, 갑질과 박봉의 건축설계업
건축설계는 건축주와 시공사의 사정으로 인하여 정해진 기한에 맞춰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또한 건물의 건설의뢰는 한정되어 있으니 설계입찰을 위한 건축가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이러한 업계 특성상 건축설계 업무는 야근과 밤샘이 타 업종에 비해 잦고 업무강도가 강한 편이다. 업계 문화도 일하면서 업무를 배우는 도제식 분위기가 팽배하여 야근과 박봉을 당연시 여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우리나라 건축사사무소 대부분은 5인 미만 사업장으로 근로기준법에서 제외되는 권리가 많고, 대형 건축사사무소들도 직원 수 1000명 미만인 소규모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설계 노동자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대부분의 건축사사무소들은 포괄임금제를 악용하여 수당 없는 야근과 초과근무를 강제하곤 한다. 계약 월급에 야근수당 및 추가수당을 포함시켜 계약시간 외 근로에 대해 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으니 기업들은 노동자가 야근이나 주말출근을 할 수밖에 없도록 업무를 지시하기 십상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넘겨서 근로를 시키거나 대체휴가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직원들에 대한 각종 복지도 대형 건축사사무소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며,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인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에서 주휴수당, 연차, 주52시간제 등에서 제외이다 보니 제대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업계의 노동과 인권에 대한 의식도 낮은 편이다. 도제식 문화를 빌미로 직원들에게 각종 사적인 지시를 하거나 갑질, 가스라이팅, 언어폭력 등을 자행하는 경우도 흔하다.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부 건축사사무소의 성차별이나 성희롱 사례도 괴담처럼 들려오곤 한다. 회식 및 술 강요, 행사 강제 동원과 같은 구시대적 사내문화도 아직까지 여러 건축사사무소에 남아있다. 사무소들은 치열한 건축설계 수주경쟁을 위해 설계비용을 싸게 책정하기 바쁘고, 그러는 동안 성과금은커녕 직원들의 월급은 언제나 박봉이다. 일부 악질 사무소들은 근로계약서 배부나 최저임금과 같은 기본적인 것조차 지키지 않고, 심한 경우 임금을 제 기간에 정산해주지 않아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이력서 스펙을 미끼로 월에 수십만원 푼돈으로 비정규직이나 대학생 인턴들을 착취하며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일부 소장과 교수들도 문제다. 이러한 부당함을 주변 친구나 가족들 외에는 호소할 곳도, 이를 해결해 줄 곳도 마땅치 않다.
건축가들에게도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일과 야근에 치여 지칠 때, 나는 종종 술자리에서 내 또래 건축가들에게 농담 삼아 “건축가들도 노동조합 만들어서 쟁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그럴 때 반응은 다양하다. 정말 그런 노조가 필요하다며 분개하는 사람, 노조는 좀 그렇다고 꺼리는 사람, 우리 업계에 그게 가능하겠냐며 조소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다들 공감하는 바는 같다. 건축설계업계의 대우가 나아지려면 결국 뭉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많은 건축가들이 자신의 꿈을 접고, 남은 일자리마저 AI에게 빼앗기는 현실에서 이대로는 건축설계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우리 건축가들에게도 건축설계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기성 건축사들과 이용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협회가 아닌, 건축설계 노동자로서의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동조합이 있어야 한다. 건축가들의 업무문화와 노동의식을 증대시키고 노동권을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우리 건축가들을 조직해야 한다. 건축업계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각종 제도 개선과 장치들이 마련되고 정치적 의제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건축설계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건축설계업계의 노동환경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첫째, 포괄임금제의 엄격한 적용과 근로기준법 위반 사업장에 대한 처벌 강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미 정부에서 포괄임금제 폐지와 5인 미만 사업장 예외조항 폐지, 주52시간제 미준수 업장에 대한 처벌 강화를 2026년도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더 이상 건축설계업도 특수성을 핑계로 법의 적용을 피해갈 수 없다. 건축가들도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법규와 제도를 통해 노동권을 보호받아야 한다.
김동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청년모두지부 조합원 ⓒ필자 제공
둘째, 직장 내 언어폭력과 성폭력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소규모 사무실에서 일하는 건축가들이 언어폭력과 성폭력에 노출되어도 익명성과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신고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가해자에 대한 분리 및 처벌과 업계 노동의식 증대 방안을 모색하여 평등한 업계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 건축사사무소들의 제 살 깎아 먹는 수주 출혈경쟁을 멈추고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더 이상 건축설계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수익을 얻어내는 구시대적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이러한 구조는 결국 업계의 몰락을 불러올 뿐이다. 건축가들도 인건비 절감이 아닌 기술혁신과 구조적 시스템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 재건축 재개발을 벗어나 변화하는 시대에 건축수주를 위한 방안을 찾아 적극적으로 의논해야 한다.
우리 건축설계 노동자들끼리 흔히 하는 쓴 농담이 있다. “설계 탈출은 지능 순이다”.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일본에서 7명이나 나올 동안, 언론들은 왜 우리나라 건축가들은 프리츠커상을 받지 못하는지 묻곤 한다. 하지만 가시나무에서 무화과가 열릴 수 없는 법. 똑똑한 사람들은 건축설계를 안 한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도는 우리나라 건축계에서 프리츠커상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건축가가 배출될 수 있을까. 나는 우리 건축설계업계가 후배들에게는 지금보다 더 나은 업무환경 속에서 본인들의 꿈을 마음껏 꽃피울 수 있는 곳이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