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반란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던 전두환과 12.3 내란의 시발점인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는 대통령 윤석열. ⓒ뉴시스 등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불법 비상계엄을 통해 내란을 벌인 지 1년 1개월여 만에 열린 9일 재판에서 결국 구형이 이뤄지지 못했다. 윤석열·김용현 변호인 등의 지연 전략으로 재판이 길어지면서 내란특검의 구형 절차가 이뤄지지 못한 채 13일 재판이 추가로 잡힌 것이다. 13일 어떤 구형이 내려질지 관심을 모으지만, 내란 사건 우두머리에게 구형할 수 있는 형량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 3가지 뿐이다. 때문에 어떤 법적 판단이 내려질지 못지않게 주목되는 건 그 판단이 끝까지 집행될 것인지가 관심이다. 이번 재판은 대한민국이 내란을 어떻게 기억하고 단죄해 왔는지에 대한 총체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전두환·노태우의 단죄와 ‘정치적 타협’의 시작
우리는 이미 30년 전 이 질문 앞에 섰던 적이 있다. 1997년 대법원은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학살의 주역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 내란죄를 적용해 중형을 확정했다.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는 사법적 선언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의미 있는 선언 가운데 하나였다. 사법부는 군사력을 동원해 국헌을 문란케 한 행위는 결코 합법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 역사적 판결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정치적 타협의 제물로 전락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당시 보수언론의 행태다. 이들은 1심 판결이 나오기도 전부터, 혹은 판결 직후부터 기다렸다는 듯 ‘사면론’을 군불 때듯 지폈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를 매듭지어야 한다”, “국민 대화합을 위해 결단이 필요하다”는 논조를 연일 쏟아내며 사법적 단죄를 정치적 부담으로 치환시켰다.
특히 한보그룹 비리와 대통령 아들 김현철 씨의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김영삼 정부가 궁지에 몰리자, 보수 매체들은 전두환·노태우 사면을 정권 위기를 돌파할 ‘통합 카드’로 적극 호출했다. 결국 법의 권위는 정치권력의 계산과 언론의 여론몰이 앞에서 무너졌다.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두환과 징역 17년이 확정된 노태우는 1997년 구속 이후 불과 2년 만에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당선자의 합의로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당시 보수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국민 대화합’과 ‘미래를 위한 결단’을 운운하며 사면을 정당화했지만, 이는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정권 말기 위기를 모면하고 보수 세력을 다독이기 위한 정략적 출구 전략에 불과했다.
12.3 내란 당시 국회에 진입했던 계엄군. ⓒ민중의소리
처벌 없는 사면이 남긴 후과, 12.3 내란
‘사회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진 전두환·노태우의 사면은 내란에 대한 법적 책임을 끝까지 묻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전두환은 끝내 반성 없이 세상을 떠났고, 노태우 역시 사후에야 유족을 통한 간접적인 사과가 전해졌을 뿐 생전의 진정한 책임 통감은 부족했다. 법적 처벌이 중단되자 역사적 교훈은 희미해졌고, “권력을 잡아도 나중에 정치적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라는 오만한 인식을 권력자들에게 심어주었다.
그 후과는 30여 년 뒤 윤석열의 불법 비상계엄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윤석열 측이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포고문과 12·12 내란 과정을 참고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점은 매우 상징적이다. 내란이 ‘처벌받지 않는 전례’로 남았기에, 역사의 범죄가 다시금 재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1997년 대법원이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 자체가 국민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폭동의 수단”이라고 판시했던 그 법리가, 30년의 세월을 돌아 다시 윤석열을 향하고 있다.
정의를 유예하는 ‘사면 알리바이’를 거부한다
윤석열 내란 재판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유독 무거운 이유는 또다시 판결은 내려지되 집행은 유예되는 비극이 반복될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무제한적 권능이 아니다. 특히 내란과 같은 헌정 파괴 범죄에 사면권이 행사될 때, 그것은 삼권분립을 무너뜨리고 법을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키는 행위가 된다. 전두환·노태우 사면이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처벌 없는 단죄는 또 다른 내란을 부를 뿐이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사형 또는 무기형이 구형될지, 구형대로 실제 판결로 이어질지도 관심이지만,하지만, 판결보다 중요한 건 이번에는 ‘사면’이라는 정치적 카드가 다시 등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란은 용서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존립을 위협한 범죄에 끝까지 책임을 물을 때 비로소 역사는 진보한다. 헌정질서를 파괴한 권력자는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상식을 이번에는 반드시 현실로 증명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다.